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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고 Oct 25. 2022

위엄함과 온화함을 겸비한 나의 과장님

좋은 어른이란...

사회 새내기 시절 중견기업의 회계부서에 막내로 입사를 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렁이였던 난 선배 뒤꽁무니만 졸졸졸 쫓아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나보다 2년 선배였던 사수는 내가 질질질 흘리고 다니는 실수투성이를 다 처리해주시고, 퇴근을 하면 근처 후미진 골목 구석에 스치기 딱 좋은 작은 분식집에 데리고 가서, 떡볶이와 라면을  함께 먹으며 조잘조잘 떠들었던 기억이 난다.


처음 입사하여 일를 수행하기 전까지 업무를 수행할 만큼의 준비가 미비했기에 나에게는 실제 업무를 받기까지 꽤 오랜 시간 내 책상은 하교 후 아이들이 다 빠져나간 큰 운동장처럼 휑하였다. 그렇게 빈 책상을 바라보며 어른들 일하는 모습을 관람자가 된 듯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창가 쪽에 앉아계신 부서 과장님은 나를 조용히 부르신다.

그러고는 나에게 베개로 쓰면 딱 좋은 두꺼운 책 한 권을 주시며  시간 날 때 이 책을 한번 읽어보세요. 하시며 씩 웃으신다.

그렇게 층층 시야 어른들이 있는 그 사이 아디쯤에서 난 업무도 배우고 어른들 세상을 엿보는 시간들이 되었다.

그들은 나에게 공손하게 부탁하셨으며, 타 부서에서 나에게 하대라도 하려 치면 미리 알아차리시고  그 과장님은 직접 타 부서 과장님과 대면하여 내가 다치지 않게 보호해주셨다.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났음에도 줄어들지 않는 검토가 필요한 서류들은 결국 서류가방에 잔뜩 구겨 넣어져 늦은 귀가를 하신다. 업무적으로 부족한 점이 있으면, 차근차근 설명해주시며 엄격하게 가르쳐 주셨으며  배움에 조금 더 욕심내 보라는 마음을 내 비치 시기도 하셨다. 어린 나이임에도 그 엄격한 조언이 창피하고 배움이 절실하지 않았던 시대라 귀찮았지만, 그분의 이야기에 따라 어느새 공부하는 나를 발견하였다.


20대 초반 아빠의 죽음으로 허둥지둥 장례식을 잡고 장례절차를 하던 중 내가 속한 부서 타 부서 할거 없이 나와도 일면식도 없는 분들조차 아빠의 장례식장에 와서 조문을 하시고 이박 삼일 밤새 고스톱을 치면서 우리 가족과 함께 하얀 밤을 함께 새워주었다.


그런 시간들을 보내고, 난 새로운 인생 여정을 떠나겠다고 밀레니엄이 오기 전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겠노라 결심하고 사직서를 내밀었다.


그리고 마지막 출근하는 날 어른들께 인사를 하고 내 책상으로 돌아왔는데 과장님이 나지막이 과장님 회의실로 부르셨다. 안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시면서 나중에 내미신다. 나중에 여행 가면 쓰려고 하나 사 두었는데 내가 먼저 필요한 거 같다며 여행자수표 한 장을 주신다.

모쪼록 건강하라며, 고생했다며, 원하는 바 다 이루기를 원한다 행운을 빌어주셨다.


내가 중년 아줌마가 되었으니 그분은 지긋한 중년 신사가 되셨을 거라 생각된다.


이분을 떠 올리면 위엄과 온화함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이제 내가 위엄 있고 온화한 어른이 될 나이가 되었다. 이런 어른이 많은 사회에 우리 아이들이 살 수 있다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도 감히 그중에 한 명 어른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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