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그만두고 육아와 가정생활에 매진하는 시간을 가졌다. 만 40세에 한 번도 제대로 해 보지 않은 일만 해보겠다고 덤벼든 것이다. 집안은 먼지 한 톨 없고 깔끔하고 정돈을 하며 매끼마다 신선한 재료로 가족들 밥상을 준비하는 주부의 모습과 아이에게는 한없이 온화한 엄마상을 꿈꾸며 시작했던 나의 새로운 인생 막은 상상했던 그림과는 다른 모습으로 흘러갔으나, 시간은 말없이 흐르고 흘러 어느덧 아이는 중학교 입학을 목전에 두고 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 음악 선생님의 영향으로 바이올린을 배우게 된 아이는 한 학기만 하고 재미없어서 그만둘 줄 알았던 예상과는 다르게 지금까지 바이올린과 인연을 맺고 지금까지 짧은 아이의 인생과 함께 했다.
어리지만 배우고 싶다고 표현한 아이가 기특했고, 같이 해 보자고 이 어려운 악기 세계에 우린 멋 모르고 풍덩 빠졌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악기를 배운다기보다는 악기를 가지고 노는 시간을 많이 가지며, 자세, 음정, 박자에 구애받지 않고 하고 싶은 곡을 마음대로 흥으로 연주하며 좋아했고, 선생님 또한 아이와 바이올린과의 관계를 더 돈독하게 만들어 주시려는 듯 내버려 두셨다. 어렸을 때 만난 바이올린이라, 아이에겐 그 관계가 특별했으며, 나에게 바이올린이 좋다고 수차례 표현을 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며, 오케스트라에 입단을 하고, 새로운 곡 연주법을 습득하면서, 아이가 마음대로 하다 다음 단계에 가려니 가슴에 체기를 느끼듯 소화하지 못하니 답답함을 느끼는 상황이 생겼다.
아는 지인분의 소개로 새로운 선생님을 만날 기회가 있어 찾아뵈었고, 아이를 만나 보시더니 하시는 말씀은 기본기가 훈련이 되지 않았다는 소견을 들었다.
아이가 음악도 좋아하고 바이올린도 좋아하는 마음을 선생님도 단번에 알아보셨지만, 기본기가 잘 정립이 안 되어 있으면 결국 시간이 흐르면 스스로가 포기하게 된다고 한다. 결국 사랑하지만, 그 사랑도 성장시키지 못하면 그 피로감으로 나 스스로 그 관계를 놓을 수 있다는 말처럼 느껴졌다.
요즘 아이는 다시 시간을 되돌려 바이올린 기초과정인 자세 연습 활 연습을 매일매일 만 6세가 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지겨울 만도 한데 그래도 하고 싶다고 한다. 무서운 호랑이 선생님은 작은 실수에도 호되게 야단을 치시며, 아이에게 단호하게 훈련시키신다. 나와 집에서 연습을 하면서 악보 보는 훈련도 힘들고 잘못된 자세 교정도 힘들다고 나에게 안기며 흐느끼며 엉엉 운다. 그런데 포기하기는 싫단다. 그렇게 다독이기도 하고, 엄하게 야단도 치면서 몇 달의 시간을 삽질을 하듯, 똑같은 자세로 반복되는 활 연습, 손가락 연습, 악보대로 박자 계산하기 등등, 자유롭게 하던 패턴과는 다른 훈련을 하며 지겹고 재미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이의 이 과정을 보면서 집 인근 큰 공터에 땅을 파는 현장이 생각이 났다. 멋진 집을 짓는 과정을 보면, 먼저 구덩이를 깊게 파, 파운데이션을 잘 다지고 그 위에 집을 지어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결국 멋진 집은 삽질의 시작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생각이 들며, 우리 아이가 훈련하고 있는 이 삽질이 의미 있는 일임을 아이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다행히 아이는 지금 하고 있는 이 훈련이 나중에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이해를 하는 듯 연습은 힘들어하나, 해야 하는 몫은 묵묵히 한다. 아이는 꿈을 꾼다. 그 꿈이 고독한 이 시간을 이길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걸.
모든 꿈의 실체가 형체를 갖추기까지는 미련하다고 생각할 수 있은 삽질의 충분한 시간의 양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내 경험에 의하면 세상에 지름길은 없는 듯하다. 결국은 돌아서 가고, 아님 제 풀에 꺾여 포기하고 만다. 다만 은근한 끈기와 기다림으로 고독한 시간을 보내고 난 후 꿈의 형체가 형상을 드러낸다.
그런 면에서 난 지름길이 있다고 살아왔고, 고독한 시간을 보내지 않고 이 순간까지 이르렀다. 삽질은 무모한 거라고 믿고 산 난 지금 이 순간 수많은 꿈은 꾸었었으나, 형체를 가진 꿈은 하나도 없다.
중학교 입학을 목전에 둔 아이는 내 손이 점점 더 필요 없을 것이며, 난 나에게 줄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