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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고 Apr 05. 2022

골프가 알려주는 다름의 미학

갤러리가 바라본 골프와 인생의 닮은꼴

아이가 어렸을 때 우연한 기회로 이곳 동네 골프장에서 골프를 접하게 되었다. 아이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클럽을 야무지게 잡고, 멈추어 있는 무겁고 단단한 쪼그만 공을 따악 따악 맞히고 나면, 그 공이  창공을 향해 멀리 날아가는 모습을 보는걸 너무 좋아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잘 때도 엄마품이 좋다며  엄마 침대 안으로 쏘옥 들어오는 어린 애기가 골프장에 가서 4시간 정도 경기를 하다 보니 이것저것 자잘하게 뒤에서 해야 하는 역할이 참으로 많았다. 클럽도 챙겨주어야 하고, 오르막길 언덕이 나오면 클럽 트롤리도 대신 끌어주어야 하고, 틈틈이 아이 간식도 챙기면서 반나절 가까운 시간을 골프장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골프장에서 아이와 보내다 보니 의도하지 않았으나 난 어느새 캐디가 해야 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고, 함께 경기를 하는 아이와 동행한 부모님들 덕에 귀동냥 눈동냥하면서 골프 규칙도 하나하나 섭렵하게 되었다.


그렇게 규칙들을 배워가면서 아이를 쫓아다닌 지 몇 해가 지나니, 골프라는 녀석에 대해 깊은 매력을 발견했다. 물론 난 관찰자 입장이서 말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골프에 한번 빠지면 왜 헤어 나오지 못하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골프는 매일매일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시간에  같은 동료와 경기를 하여도 똑같은 결과를 가질 수 없는 운동이다.  왜냐하면, 선수 본인의 체력 변수, 마음 감정의 변수 이외에도 수많은 외부적인 변수를 감안해야 하는 운동이다.  바람 부는 날,  해가 쨍쨍한 날, 비가 오는 날, 땅 굳기가 딱딱한 날, 말랑말랑한 날 등등 매일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티 복스 안에서 어제와 동일한 스윙을 하더라도 공은 어제 떨어진 그 장소에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즉 그 말은 나의 노력만으로 정복하기에는 외부적인 변수가 너무 많아,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참으로 하찮음을 일깨워 주는 운동이다.  소위 골프를 잘하는 선수들은 그런 자신의 위치를 인정하고 열심히 열심히 연구하고 노력하여, 그 외부적인 변수의 방해 요소를 줄이고 자기의 기량을 키워 더 나은 성적을 내는 이들이 아닌가 싶다.


골프는 한 홀만 잘한다고 기뻐할 수 없는 운동이다. 반대로 한 홀을 잘 못했다고 슬퍼할 필요도 없는 운동이다.  왜냐하면 각각의 홀이 끝나면 다시 리셋하고 다시 시작한다.

18홀이라는 각각의 쳅터가 이어지는 기나긴 여정을 끝날 때까지 아무도 일희일비할 수가 없다. 한 홀 한 홀이 인생의 한 쳅터를 이야기하듯 이야기하듯이 인생의 실패가 있어도 다음 홀에 심기일전하면 또 다른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반면 한 번의  좋은 성과를 내어도  그게 전체의 성공이 아닌 것이다. 18홀의 과정을 지나면서 실수와 후회, 실망, 기쁨과 짜릿함 즐거움 모든 과정에서 크고 작은 경험을 하면서 그 모든 것이 어우러지는 과정을 거치고 18홀 마지막 퍼팅이 끝나면 우린 모두 결과에 관계없이 모자를 벗고 웃으면서 악수를 하며 서로를 격려하고 그린을 빠져나간다.


골프에서 스코어를 계산할 때 장타도 단타도 각각 동타로 인정된다. 멋진 드라이버 샸을 잘하는 선수에게 정말 골프를 잘하시네요.라고 하지 않으며, 퍼팅만 기가 막히게 잘하는 선수에게 훌륭한 선수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장타와 단타를 각각의 다른 자연적인 조건과 거리 조건에서 적절한 클럽을 활용하여 가장 낮은 타수로 홀까지 공을 넣은 선수에게 우린 선두라고 부른다.  그렇게 낮은 타수로 홀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다른 강점을 가진 클럽들을 잘 선별해서 경기를 해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에 각각의 클럽 자체를 두고 중요도를 비교할 수 없다. 거리에 사용하는 클럽, 장거리에 사용하는 클럽, 각각의 클럽은 다른 의미에서 각각 의미 있는 클럽이다.


골프에는 핸디캡 제도가 있다. 그 저변에는 "우린 모두 다르다"라는 다름의 미학이 깔려있다. 같은 시간을 할애해도 더 빨리 익히는 사람 천천히 익히는 사람, 일찍 섭렵한 사람, 늦게 시작한 사람. 이 핸디캡 제도를 통해 다양한 처지, 조건을 가진 골프를 즐기고자 하는 이들은 각기 다른 기량에 제약받지 않고 같은 경기 내에서  서로에 대한 존중하는 마음가짐과 배려하는 매너만 존재한다면 모두가 즐겁게 즐길 수 있는 운동이다.


아직 가보지 않은 인생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 본다.

예상치 않은 곳에서 홀인원을 할 수 있고, 평소에 잘했던 벙커샷도 오늘은 이유 없이 힘들게 탈출하고, 맞바람이 불어 공이 나무뿌리에 박혀있고, 참으로 생각지도 못한 상황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 모든 드라마 같은  순간들 또한 모두 지나갈 것이며, 어느새 난 18홀 마지막 퍼팅을 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말이다. 그러기에 오늘도 그리 실망할 일도 괴로워할 일도 그리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날이 오면 멋지게 모자를 벗고 활짝 웃으며 악수하면서 , 당신과 함께하여 즐거웠어요.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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