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일주일 전부터 새로 개설한 은행카드를 언제부터 사용할 수 있냐고 재차 물어본다. 자기 이름이 새겨진 은행카드를 가져본 적이 없는지라, 학교가 파 한 후 집에 오는 길에 있는 카페에서 친구들과 함께 자신의 카드를 사용하여 지불하고 싶은 로망을 이루고 싶은 마음에 자꾸 물어본다.
난 이런저런 사사로운 이유를 말해주며 차일피일 미루고 아이는 실망을 한 눈치이나 기다리겠다며 누누이 빨리 해 달라고 조심스럽게 부탁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금요일 오전이 되었고, 아이가 등교 전 학교 문방구에서 펜을 사야 한다며 2파운드를 달라 한다.
지갑을 뒤져보니 동전 1파운드 50펜스가 있어서 하는 수 없어 모자라지만 있는 돈을 주었다.
만으로 11살인 우리 집 외동아들은 요즘 어린이와 청소년의 기로에서 꿈틀꿈틀 변화하는 과도기를 보내는 시기이다.
난 사십 대 후반 중년 아줌마이다. 아줌마라는 현재 위치를 인정하지 않고 내적으로는 에지 있는 언니가 되고 싶어 하는 갈등과 항상 싸우는 갱년기 여성이다. 현재 내 삶을 대면하기가 불편하고 20여 년 전 생기발랄한 무서울 것 없었던 20대 젊은 언니의 모습이었던 내 모습을 사진으로 접하며, 새로운 과도기에서 갈등하는 또 한 명의 가족 구성원인 아들과 항상 대립관계에서 긴장하며 하루하루 살고 있다.
그런 아들이 엄마의 날이라고 나에게 수선화 한 다발과 쿠키 두 개 그리고 펜으로 꾹 눌러쓴 메모를 함께 건넨다.
용돈을 은행에 넣어두어 필요한 건 항상 내가 사주었던 터라 아이가 돈이 없었을 텐데 이 선물을 어떻게 준비를 했을까 싶어 물어보았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문방구에서 산다고 가져갔던 1파운드 50펜스 중 수선화 한 다발을 1파운드에 사고 공원 카페에 가서 50펜스만큼 산 쿠키 두 봉지였다고 한다. 그렇게 장만한 선물과 메모를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까지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 생화인 수선화를 목마르게 했단다.
이제야 일주일 전부터 은행카드가 필요한 이유가 있었다는 걸 알았다. 나름 엄마의 날 근사하게 준비를 하고 싶었는데 계획에 차질이 되니 문방구에서 펜을 산다는 빙자로 차선책으로 준비를 한 것이다.
쿠키 두 개를 보며, 반성이 되었다. 이렇게 이쁜 마음이 있는 아직 어린이인데 엄마인 난 아이에게 천천히 성장해도 된다는 이야기보다는 더 빨리 성장하라고 앞으로 앞으로 더 밀어버리고 있었다. 책임과 독립적인 행동과 모든 행동의 결과물에 대해 운운하면서 말이다.
참으로 잔인한 엄마다.
천천히 가도 된다고, 좀 못 해도 된다고, 잘하지 못해도 된다고...
난 왜 그렇게 이야기해 주지 못했을까...
이 생각을 하면서 아이가 준 쿠키를 먹을 수 없어서 하나는 남편에게 주고 나머지 하나는 오랫동안 테이블 위에 얹어 놓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