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고 Mar 31. 2022

엄마라고 불리는 중년 언니의 반성문

어느 봄날 영국 엄마의 날에

아이가 일주일 전부터 새로 개설한 은행카드를 언제부터 사용할 수 있냐고 재차 물어본다. 자기 이름이 새겨진 은행카드를 가져본 적이 없는지라, 학교가 파 한 후 집에 오는 길에 있는 카페에서 친구들과 함께 자신의 카드를 사용하여 지불하고 싶은 로망을 이루고 싶은 마음에 자꾸 물어본다.

난 이런저런 사사로운 이유를 말해주며 차일피일 미루고 아이는 실망을 한 눈치이나 기다리겠다며 누누이 빨리 해 달라고 조심스럽게 부탁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금요일 오전이 되었고, 아이가 등교 전 학교 문방구에서 펜을 사야 한다며 2파운드를 달라 한다.

지갑을 뒤져보니 동전 1파운드 50펜스가 있어서 하는 수 없어 모자라지만 있는 돈을 주었다.


만으로 11살인 우리 집 외동아들은 요즘 어린이와 청소년의 기로에서 꿈틀꿈틀 변화하는 과도기를 보내는 시기이다.

난 사십 대 후반 중년 아줌마이다.  아줌마라는 현재 위치를 인정하지 않고 내적으로는 에지 있는 언니가 되고 싶어 하는 갈등과 항상 싸우는 갱년기 여성이다.  현재 내 삶을 대면하기가 불편하고 20여 년 전 생기발랄한 무서울 것 없었던 20대 젊은 언니의 모습이었던 내 모습을 사진으로 접하며,  새로운 과도기에서 갈등하는 또 한 명의 가족 구성원인 아들과 항상 대립관계에서 긴장하며 하루하루 살고 있다.


그런 아들이 엄마의 날이라고 나에게 수선화 한 다발과 쿠키 두 개 그리고 펜으로 꾹 눌러쓴 메모를 함께 건넨다.


용돈을 은행에 넣어두어 필요한 건 항상 내가 사주었던 터라 아이가 돈이 없었을 텐데 이 선물을 어떻게 준비를 했을까 싶어 물어보았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문방구에서 산다고 가져갔던 1파운드 50펜스 중 수선화 한 다발을 1파운드에 사고 공원 카페에 가서 50펜스만큼 산 쿠키 두 봉지였다고 한다. 그렇게 장만한 선물과 메모를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까지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 생화인 수선화를 목마르게 했단다.


이제야 일주일 전부터 은행카드가 필요한 이유가 있었다는 걸 알았다. 나름 엄마의 날 근사하게 준비를 하고 싶었는데 계획에 차질이 되니 문방구에서 펜을 산다는 빙자로 차선책으로 준비를 한 것이다.

쿠키 두 개를 보며, 반성이 되었다. 이렇게 이쁜 마음이 있는 아직 어린이인데  엄마인 난 아이에게 천천히 성장해도 된다는 이야기보다는 더 빨리 성장하라고 앞으로 앞으로 더 밀어버리고 있었다. 책임과 독립적인 행동과 모든 행동의 결과물에 대해 운운하면서 말이다.

참으로 잔인한 엄마다.


천천히 가도 된다고, 좀 못 해도 된다고, 잘하지 못해도 된다고...

난 왜 그렇게 이야기해 주지 못했을까...


이 생각을 하면서 아이가 준 쿠키를 먹을 수 없어서 하나는 남편에게 주고 나머지 하나는 오랫동안 테이블 위에 얹어 놓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전 03화 실수해도 괜찮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