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날을 예약해놓은 여자
삶의 동력을 잃어버린 당신을 위하여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한낮에 매미가 시끄럽게 울어대던 어느 무더운 여름날 점심 먹고 난 다음 체육시간은 참으로 나른했던 기억이 난다.
여름방학을 며칠 남겨두지 않은 무료한 한낮의 여름날이라 체육선생님은 큰 운동장에 큰 직사각형을 그어 가운데 선을 그은 후 두 팀으로 나누어 피구게임을 하라고 아이들에게 느긋한 오후 시간을 보내자고 제안하셨다.
평소에도 뛰고 땀 흘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이기에 체육시간이 반갑지 않은데 피구같이 두 진영을 나누어 상대방이 날리는 공을 피하며 가슴 졸리며 승패를 가누는 운동은 더더욱 좋아하지 않았다. 딱히 핑곗거리도 없어서 게임에는 참석했으나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심경이 기억이 난다.
의욕이 넘쳤던 상대방 진영이 던진 공을 피할 의지를 보이지 않고 게임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난 쉽게 몸에 맞고 아쉬움 일도 없이 바로 나와 게임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던 기억이 뚜렷하게 난다. 그렇게 난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동기의식없이 그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기다렸었다.
이십 대 끝자락에 온화한 남편을 만나 이쁜 아들도 한 명이 있는 지금 난 누군가가 보기엔 안정적인 가정을 이룬 사십 대에 평범한 주부이자 나름 자기 분야의 직업영역에서 자잘하긴 하나 경제활동도 하는 보통 아줌마인데. 이 소중한 나의 영역들에 대해 감사함보다는 삶의 동력을 잃어버린 무기력한 현재의 나를 대하며 그 어린 시절 피구게임을 하던 초등학생 시절의 내 모습이 내 삶의 영역에 겹친다.
어쩌면 내가 이 가족 구성원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난 그 시절 피구게임에서처럼 싱겁게 상대 진영의 선수의 공을 일부러 멎고 선 밖으로 나가기를 자처했을 것이다.
난 죽음이라는 단어를 향해 대담하게 마주 본다. 한때는 기독교인이라고 교회에 참석했던 나에게는 이 단어가 주는 죄책감과 두려움 그리고 사후세계에 대한 응징 이 모든 것들이 내 사고를 자유롭게 하지 못하여 입 밖으로 끄집어 내는 것조차 두렵고 떨렸으나, 삶의 동력을 상실한 지금 난 용기를 내어 담담하게 그 의미를 당당하게 마주 보며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는 죽음이라는 과정을 통해 유한한 인생의 기간동안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메시지를 그 죽음이라는 의미가 우리에게 전달해 준다. 우리는 모두 그때가 오면 이 세상에서 다시 자연으로 내가 상상할 수 없는 그곳으로 긴 여행을 떠난다. 유한한 나의 시간을 생각하니, 나에게 선물같이 다가온 가족, 나에게 주어진 이 한정적인 기회의 시간들이 눈물겹도록 소중함게 생각이 든다. 내가 사라지면 한창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가 슬퍼할 생각을 하니 가슴 깊은 곳에서 내가 지금은 살아야 하는 이유가 분명해진다.
난 죽는 날짜를 예약해 두고 그날까지 내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 온전히 사랑하고 그날이 오면 웃으면서 떠날 것이다.
그것이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
만일 그 시절 피구게임 장소에 내가 서 있는다면 온 힘을 다해 살아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