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OOF: 영국 시골농장 여행기 #3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한여름도 어느덧 지나 선선한 바람이 분다. 매일 아침 버스를 타고 광화문 사거리에 내려 청계천을 따라 걸었다.
무겁게 내려앉은 눈꺼풀은 사무실에 들어가는 순간 번쩍 떠진다. 가장 밝은 표정과 힘찬 목소리로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나면 또다시 하루가 시작된다.
세 달 동안 회사를 다니며 터득한 게 하나 있다.
못하겠는 걸 어떻게든 해내는 것. 모든 일을 완벽하게 수행하는 능력을 얻었다기보다는 내가 해본 적 없는 일이라도 주어진 이상 책임지고 결과를 내놓아야 하는 회사의 진리를 깨달았다는 표현이 더 알맞을지도 모른다.
불행인지 행운인지 나는 한 번도 쉬운 업무를 맡아본 적이 없었다.
입사 첫날, 채용 박람회에 사용할 모든 홍보물을 일주일 안에 완성해야 하는 업무를 맡았다. 대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인 강의 몇 개를 수강한 게 전부였던 나에게 기획과 제작, 인쇄까지 모든 과정을 혼자서 한다는 건 이제 막 발걸음을 뗀 아기한테 100m 경주를 뛰라는 것과 다름없었다. 모르는 건 모든지 배우겠다는 자세로 들어왔지만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어떤 일이든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어떻게든 해내는 것.
없는 역량까지 끌어모아 기획을 했고 퇴근 후에는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을 하고 있는 친구를 만나 일대일 레슨을 받으며 제작을 했다. 잠들기 직전까지 유튜브로 인쇄 용어를 익히며 인쇄소에 견적을 넣었다.
눈물과 과로로 얼룩진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나가고 나는 다행히도 주어진 일을 무사히 마쳤다.
하지만 이보다 더 어려운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외국인으로 이루어진 팀과 함께 홍보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었다. 미국에 지사가 있어 외국인 직원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함께 일하게 될 줄은 몰랐다. 면접 당시 영어를 잘하냐는 질문에 초등학교 때 영어학원을 다녔던 이후로 제대로 공부해 본 적이 없다고 대답했기 때문이다.(생각해 보면 지나치게 솔직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답은 정해져 있었다.
모든 소통은 영어로 진행되었고, 나는 9살에 배웠던 영어 실력에 손짓과 발짓을 더해 나의 의견을 전달했다. 스스로 웃음이 나올 만큼 영어 실력은 엉망이었지만 딱히 부끄럽지는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전할 수 없다는 사실이 답답할 뿐이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그 사이 뉴욕 출신의 팀원과 친해져 탕비실에서 수다를 떨거나 함께 밥을 먹곤 했다.
광화문 한복판의 빌딩에서 외국인과 함께 일하는 삶이라니.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던 일들이 평범한 일상이 되자 마치 드라마 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비현실적이었던 나머지 정말 드라마 같은 일이 펼쳐졌다.
어느새 커피 네 잔을 비우며 정신없이 일을 하고 있던 오후 5시, 나는 다음 달에 진행할 콘텐츠 일정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인사 팀장님에게 연락을 받아 하던 일을 멈추고 회의실로 들어갔다.
팀장님은 나에게 계약 종료를 알리며 내일부터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2주 전 정규직 전환을 제안받아 면담을 가진 후, 인사팀으로부터 이번주에 계약서 작성을 진행하겠다는 전달을 받은 지 6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던 때였다.
나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고요한 침묵을 깨고 어떻게 된 일인지 질문했다. 하지만 팀장님은 내가 부족했거나 잘못해서가 아니라는 말만 할 뿐 구체적인 이유는 말해주지 않았다. 차라리 내가 부족했기 때문에, 무언가를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내가 생각해도 나는 부족한 게 많았으니까.
하지만 이별 통보에 납득 가능한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나는 빠르게 결과를 받아들였다. 당황했지만 실망하지는 않았다. 일을 하며 얻은 게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잃은 게 있다면 짧은 사이 정든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시간은 벌써 6시를 넘어가고 있었고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기엔 이미 늦어버렸다. 한 명 한 명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는데. 3개월 동안 가족보다 더 오랜 시간을 함께 했으니까.
나는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조용히 짐을 챙겨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문이 닫히자마자 울음이 터졌다.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슬픔이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가 어찌나 빠르던지 순식간에 1층에 도착했고 막 터지기 시작한 눈물은 쏙 들어가 버렸다. 나는 양손 가득 짐을 들고 로비를 빠져나오며 생각했다.
‘이거 완전 드라마 주인공 같잖아?’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던데. 마지막 찰나에 웃음이 나왔다는 건 오늘의 결말이 희극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집까지 한 시간이 걸리는 버스를 타려다 그냥 택시를 탔다.
나는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 당장 내일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몇 달 전 예린이가 했던 마지막 말이 생각났다.
“무슨 일 년 동안 다니는 것도 아니고, 세 달이면 금방이야. 그리고 만약에 못 다니겠잖아? 비행기 표 끊고 유럽으로 와.”
나는 영국에 있는 예린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유럽가도 돼?”
예린이 말했다.
“그래. 언제 올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