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파크림치즈 베이글
겨울이 지나고 드디어 봄이 왔다.
개인적으로 겨울을 좋아하긴 하지만 이번엔 어쩐지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컸다.
회사를 그만 둔 뒤로 무척이나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는데도 올 겨울이 너무 추웠기 때문일까.
그 겨울의 추위 속에서 나는 앞으로 뭘 할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행동에 옮기는 시간을 보냈고,
그것은 내가 아닌 다른 것에 중심을 둔 여태까지의 삶과는 많이 달랐기에 생각보다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었다.
그러는 사이 정말 따뜻한 봄이 찾아왔다.
그리고 오래 살던 수도권을 떠나 이 지역으로 이사온 지 어언 일주일이 지났다.
그 모든 것을 두고 멀리 떠나온 것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이런 저런 추억과 아쉬움들이 곳곳에서 솟아나 이곳 생활에 집중하지 못하게 될까 걱정이 됐다.
그래서 일부러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다보니 아직까지는 멀리 이사와서 나 혼자라는 사실을 크게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껏 나의 모든 굴곡진 삶의 그래프는 서울과 일산, 수도권에 그려졌다.
이제는 새로운 도면에 그래프를 그려야 할 때다.
난 이 곳에서 첫 점을 잘 찍었을까.
우선 글쓰기와 일러스트로 제 2의 인생 방향을 잡았기에 거기에 최대한 집중하고 있다.
그런데 그 생활은 운동량을 떠나 활동량 자체가 적어지는 뚱뚱한 삶에 올라타게 되는 것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왜 그토록 마라톤과 루틴을 만들어 사는 삶에 몰입하는지, 소설가로서 뿐만 아니라 성숙한 인간으로서의 그를 바라다 보게 된다.
고민 끝에 오전에는 점핑이라는 운동을 등록해서 체력과 건강을 키우고 있고, 될 수 있으면 집에서 밥을 해먹은 후에 1일 1글과 1그림을 실천하려고 한다.
"참나. E 형 인간이 어쩌다 이리되었지?"
이사온 동네도 익숙치 않은데, 그것도 모자라 새로 등록한 운동센터는 집과는 다른 동네에 위치해 있다.
집 앞에는 마땅한 곳이 없었기에 약간 멀어도 남의 동네 운동센터로 가기로 한 것이었다.
그 기회에 주변 동네도 알 겸 운동을 마치고 거의 45분 정도를 걸어서 집으로 가는데, 먹는 거엔 어찌나 눈이 보배인지 운동센터를 등록한지 일주일도 안되 떡볶이집을 세 군데나 뚫었다.
아니 기껏 운동하고 떡볶이를 매일 먹어서는 안 될 노릇이지.
반성은 꼭 먹고 난 후에 따라온다.
몇일 떡볶이를 먹고 나서 오늘은 집에서 해먹으리라 다짐을 하며, 위기의 떡볶이 코스를 숨도 안쉬고 넘어 간다.
안전하게 집 도착.
지방으로 이사를 오니 그 전에는 찾지도 않던 서울의 핫플레이스나 유행하는 음식들에 그렇게 관심이 간다.
몇일 전 텃밭에서 수확해 온 유일한 농작물인 쪽파가 있어서 요즘 제 1의 관심사였던 쪽파크림치즈 베이글을 해보자 싶었다.
우선 주인공인 쪽파를 다듬고 찹찹 썬다.
집에 짭짤한 햄 종류가 있으면 같이 잘게 잘라준다.
난 살라미가 있어서 활용했고 베이컨을 구워서 잘라 사용해도 좋다.
크림치즈에 다진 쪽파와 살라미를 섞으면서 소금을 적당히 톡톡 쳐주면 완성!
별거 아니네.
“와 뭐야. 되게 맛있네! 이거 사먹을 필요 없겠구만.“
일단 크림치즈 자체가 풍부하게 맛을 이끌어 주는데다 느끼할 때쯤 알싸한 향의 쪽파가 물리지 않게 해줘서 계속 먹을 수 있게 만든다. (안좋은건가?)
여기다 짭짤한 살라미가 감칠맛을 더해주면서 한끼 식사로 충분히 만족감을 준다.
이 곳에 와서 처음 만든 반창작 레시피, 쪽파크림치즈 베이글. 당분간은 나의 식탁에 자주 올라올 것 같다.
이것 또한 다이어트용 음식은 아니지만 “한끼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애써 위안하면서 베이글을 우물우물 씹는다.
그러면서도 나는 언제 슬림한 나라로 가는 비자를 받을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한층 선명해졌고, 집 안에서 바라보는 바깥은 참 평화로워 보인다.
내 마음만 오락가락할 뿐.
이렇게 E형 인간은 해먹는 낙에 집순이,밥순이가 되어 집안에서 지내는 것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