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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반찬 다이어리 May 02. 2023

8. 루꼴라, 드디어 만났다! 루꼴라 샐러드

이국적인 맛과 향, 루꼴라 샐러드

작년 생초보 농부로 텃밭을 갓 가꾸기 시작했을 때 나는 어느 계절에 어떤 농작물을 심어야 되고, 어느 지역과 기후에서 어떤 것이 잘 자라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는 와중에 떠오른 것은 맛있게 먹었던 특이한 채소와 허브들이었다.

상추같은 건 특별히 궁리를 할 필요도 없이 모종시장에 널려있었기에 우리는 그것들을 당연한듯 텃밭에 먼저 들여놓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상추는 가만히 놔두기만 해도 저절로 잘 자라는 채소로 알았었기 때문에, 상추에는 눈길을 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심은 지 얼마 안되서 비실대며 죽어버렸고, 상추 농사에 실패한 데서 오는 충격이 은근히 사람을 자근 자근 괴롭혀댔다.

아무리 농사에 무지해도 상추라는 건 베란다에서도 실패없이 잘 자라는, 그야말로 아무한테나 잘해주는 친절한 채소인데 은근한 충격과 구겨진 자존심이 마음 한 귀퉁이를 서늘하게 했다.

주변 어르신의 도움 말씀을 듣고 우리는 거름을 너무 많이 준 나머지, 영양 과다로 상추가 썩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역시 뭐든 과하면 안되는구나."

그 뒤로 우리는 그 영양분 넘치는 비옥한 땅을 삽으로 퍼내고 다시 고르기를 반복하여 결국엔 지방 덩어리를 제거하듯 거름을 덜어냈다.

가장 쉬운 상추 농사를 실패한 상처는 생각보다 오래가서, 우리는 서로 상추 심기를 주저하며 다른 채소로 관심을 돌리게 되었다.

원래도 계획하고 있긴 했지만, 상추로 인한 충격 때문에 루꼴라와 바질을 계획보다 급하게 사서 심게 되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루꼴라는 초반에 굉장히 왕성하게 잘 자라났고,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기특하고 신기한 맘으로 잔뜩 들뜰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 이파리는 피자를 먹을 때 봤던 그 모습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루꼴라가 이렇게 생겼구나. 피자 토핑으로 얹어먹은 거랑 정말로 똑같아."

폭풍 성장한 루꼴라를 따 먹으면 고소하면서도 짭짤한 맛이 느껴졌다. 그리고 마지막엔 진한 풀내음이 입안을 개운하게 만들어줬다.

그렇기에 이 루꼴라가 느끼한 음식과 어우러졌을 때 제대로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었다.

피자나 하몽, 햄 치즈위에 괜히 올리는 게 아니었다.

우리는 그렇게 루꼴라를 마구 따다 먹었고, 그것이 더이상 희귀한 채소로 여겨지지 않을 때 쯤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다.

루꼴라 이파리는 벌레한테 뜯어먹혀 점점 구멍이 숭숭 뚫리고 누렇게 변해가더니 생기를 잃었고, 그 뒤로 다시는 그 생생한 잎을 틔우지 못한 채 사그라 들었다.


그리고는 다시 봄이 왔다. 이번엔 나름 농사 2년차라 루꼴라 모종이 아니라 씨를 심어서 발아시키기로 했다.

씨를 심고 한 3주 지났으려나. 작고 귀여운 잎이 돋아 났고, 그뒤로 한 1-2주가 지나니 제법 루꼴라 모양의 잎을 갖추고 있었다. 이제 진짜 먹어도 될 법한 생김새였다.

제대로 된 루꼴라의 모습을 오랜만에 마주하니 머리 속에 즐거운 상상이 펼쳐졌다.

사실 루꼴라 피자를 해먹고 싶었지만 도우를 만들자니 번거롭고 빵 발효가 잘 될지 자신이 없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샐러드용 채소 말고 코리안 텃밭에서 나는 토종 채소를 보면 응용할 샐러드가 없을까 늘 고민하는데, 이번에는 샐러드 레시피로 보장된 루꼴라 아닌가.

이 신선함 그대로 살려서 샐러드를 만들면 되니 얼마나 간단한가.

게다가 자연의 맛을 그대로 즐기면서 맛까지 보장된다면 얼마나 완벽한가.

 

잎이 상할 새라 고이 집으로 가져온 루꼴라를 깨끗이 물로 씻어주었다.

통풍이 잘 되는 창고에서 잘 자고 있는 숙성된 토마토를 썰고 접시 위에 올려놓은 다음 소금을 조금 쳐주었다.

그리곤 루꼴라를 얹고 올리브 오일을 휘익 둘러주면 색감이 예쁘게 살면서 토마토의 맛을 더 돋구어 준다. 이로써 간단하면서도 예쁘고 건강한 샐러드 한접시가 완성된다. 여기에 후추를 쳐주거나 꿀을 조금 뿌려주면 더 맛있게 자극적으로 즐길 수 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루꼴라가 식탁에 올라오니 마치 이태리 식당에 와있는 듯한 기분이 들면서 뭔가 나를 더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토마토의 숙성된 단맛과 루꼴라의 짭짤하고 고소한 맛이 의외로 이질감 없이 잘 어울렸다.

이국적인 맛과 모양새에 보는 재미까지 있는 이 루꼴라는 올 봄 허브계의 1인자로 우리 식탁에 꽤나 오래 등장할 것 같다.


역시 요리든 뭐든 시도해 봐야 나에게 맞는지 안맞는지 알 수 있다.


"루꼴라. 올해는 아프지 말고 튼튼하게 자라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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