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을 용서하고 그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차 사고로 약혼자 케니를 잃었다.
사고로 부상을 다해 회복하는 기간 동안 나만 살았다는 자책감에 빠져 괴로워했다.
나 때문에 이 사고가 일어난 것 같아 스스로가 싫었다.
'내가 운동이랑 요가를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헬스장에 가지도 않았을 테고 헬스장 앞에서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내가 케니에게 이사 가자고 제안만 안 했어도 사고가 발생한 헬스장에는 가지 않았을 텐데..'
내가 하고 싶은 것들 때문에 사고가 일어난 거야..
내가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다른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면 나와 케니는 잘 살고 있었을 텐데..'
'내가 밖에 나가서 활동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집순이였다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텐데..'
이 후회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나를 괴롭혔다.
너무 괴로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싫어하기로 결정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때문에 사고가 일어났다고 믿었다.
내 성격 때문에 케니가 하늘나라로 갔다고 생각했다.
모험적인 내 성격,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는 내 모습을 부정했다.
내 존재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죽게 만들었는데 내가 왜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지?
나의 존재의 이유는 뭐지? 내가 계속 살아가는 게 맞는 걸까?'
살아있을 자격이 있는지 혼란스러웠다.
스스로 끊임없이 나를 공격했다.
상처가 있는 곳을 계속해서 공격하면 상처가 덧나 깊은 흉터가 생긴다.
잘못하면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변형되어 암세포가 되듯 자책과 죄책감으로 나를 계속 공격하는 것은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
나의 존재가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케니도 잃고 존재의 목적도 잃었다.
격렬한 슬픔의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올 때를 제외하고 약 7개월 동안 멍하니 눈만 뜨고 있는 시체처럼 지냈다.
눈에 초점이 없었고 얼굴에 생기가 없었다.
죄책감 때문에 평생 운동과 바깥활동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숨이 막혔다.
여행과 새로운 모험이 다시는 내 미래에 없다고 생각하니 사는 의미가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부정하고 있는 것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머리가 터질듯하게 괴로운 어느 날 나는 상담 선생님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선생님, 사고가 저 때문에 일어났다는 생각에 미칠 듯이 괴롭습니다.
스스로 저에게 죗값에 대한 벌을 내렸어요.
사고를 일으켰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평생동안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운동이랑 요가를 싫어하고 여행과 모험을 안 하겠다고 결론을 내렸어요.
그런데 이것들을 평생 못한다고 생각하니까 살기가 싫어요.
우울하고 재미없는 인생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이것들을 다시 좋아하면 제가 너무 이기적인 거 같아요.
사랑하는 사람은 이 세상을 떠났는데 제가 행복을 누리고 살 자격이 있을까요?"
상담선생님이 나의 울부짖음을 가만히 듣고 이렇게 말했다.
"아이비, 이런 생각들 때문에 정말 힘들겠어요.
오늘 제 말을 잘 들어주세요.
아이비, 이 사고는 절대 아이비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에요.
제가 왜 아이비 잘못이 아닌지 설명해 볼게요.
상황을 가정해서 말해볼 테니까 잘 들어보세요.
케니가 보고 싶은 영화가 생겨서 영화관에 영화를 보러 가자고 아이비한테 말했어요.
그래서 가고 있었어요.
케니가 영화관에서 먹을 수 있는 스낵을 사자고 마트에 들르자고 제안했어요.
그래서 마트에 갔다가 영화관에 가는 도중 큰 차사고가 났어요.
아이비가 안타깝게 목숨을 잃고 케니만 살게 됐어요.
케니가 자신이 영화관에 가자고 먼저 제안해서 이 사고가 일어났다고 사고는 전부 자기 책임이라고 자책을 해요.
영화관 가던 도중 마트에 들르지만 않았어도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고 후회를 하고 자책을 합니다.
케니는 평생 동안 영화를 절대 보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이 사고는 케니의 잘못이 맞나요?
케니가 평생 동안 영화를 볼 자격이 없나요?
영화를 본다고 해서 아이비가 케니를 원망할 건가요?"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케니가 먼저 제안을 했을 뿐이지 나는 영화 보는 것을 케니만큼 좋아했다.
그가 먼저 물어봤을 뿐이지 나는 영화를 보면서 스낵 먹는 것을 그 누구보다 즐겼다.
케니가 물어봤을 때 YES or NO라고 대답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고 내가 동의했기에 YES라고 대답했다.
YES라고 대답한 내 책임도 있었다.
사고가 케니 때문에 일어났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곧바로 나는 반문했다.
"선생님 이 경우는 저도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보러 가자고 승낙한 거예요.
지금 제가 겪은 상황과 달라요.
케니는 새로운 모험보다는 집에서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 영화 보고 게임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요.
저녁형이기 때문에 아침에는 여유롭게 집에서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하는데,
사고 당일 아침에 케니가 헬스장에 가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데 제가 억지로 데리고 간 게 아닌가 싶어서 죄책감을 가지는 거예요.
지금 케니한테 물어볼 수는 없지만 케니가 사고 날 아침에 헬스장에 가기 싫어했다면 어떡해요?"
선생님이 말했다.
"그날 아침 케니가 가기 싫다고 아이비한테 말했나요?"
"그건 아니지만.. 토요일 아침마다 헬스장 가는 것은 저희가 하는 루틴이긴 했어요.
하지만 제가 요가교실에 늦을까 봐 케니한테 재촉을 해서 케니가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아 보였어요.
찝찝한 마음이 자책을 하게 만들어요."
"아이비의 태도 때문에 자책을 하는 거네요.
헬스장에는 토요일마다 가는 루틴이어서 케니도 가는 것을 알고 있고 오래전부터 자신도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승낙을 한 거가 아닐까요?
케니도 아이비가 활동적인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곳에 가서 모험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예전부터 알고 있었죠?
그런 아이비가 좋아서 계속 만남을 유지하고 미래를 같이 그리려고 했죠?
케니는 아이비가 좋아하는 것을 같이 하려고 했고 좋아했을 거예요.
그는 아이비 자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좋아했어요.
케니가 좋아했던 아이비를 부정하고 싫어하면 케니는 슬퍼하겠죠?
아이비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것들을 싫어하면 그것은 케니가 사랑했던 아이비가 아니에요.
아이비는 케니와 함께 할 때처럼 아이비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을 계속하고 끊임없이 찾아나가야 할까요?"
그렇다. 지금까지의 나를 부정하면 케니가 사랑했던 나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가 원치 않을 거라 생각이 든다.
그는 자신과 다른 나를 그대로 봐줬고 새로운 모험을 좋아하는 나를 사랑했다.
케니를 봐서라도 나 자신을 소중히 대해야 했다.
나는 자책을 멈춰야 했다.
사고가 내 잘못이 아니라 토요일 아침에 시속 50으로 법으로 정해진 도로에서 시속 100으로 달린 그 사람의 잘못이었다.
우리는 정말 운이 안 좋게 그 타이밍에 거기에 있었던 것이라고 받아들여야 했다.
그는 언제나 내가 행복하기를 바랐고 최선을 다했다.
케니의 바람대로 내가 매일 행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찾아 실천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찾고 실천해서 나답게 살아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는 운이 좋지 않으면 사랑하는 사람을 내일 당장 잃을 수도 있다.
미래는 예측불가능하므로 언제 인생의 막이 내릴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자신이 좋아하고 의미 있는 일들을 조금이라도 매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내일 해야지, 오늘은 피곤하네 다음 주에 해야지, 돈을 더 모으고 해야지, 퇴직하면 해야지..'라고 미루고 또 미룬다.
나 또한 그랬다.
죽음은 내게 멀리 있다고 생각했다.
사고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고 싶은 것을 미루는 똑같은 실수를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나는 잃어버린 존재의 의미를 다시 찾아야 한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을 하면서 하고 싶은 것들을 찾아야 한다.
확실하게 정한 나의 목표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기회가 될 때마다 잊지 못하는 좋은 추억과 경험을 될 수 있으면 많이 하는 것이었다.
절대로 하고 싶은 것을 미루지 않는 것이다.
활동하기 불편한 몸을 회복해서 건강한 몸을 만드는 게 목표다.
느려지고 딱딱해진 뇌를 글을 읽고 쓰는 것을 통해 다시 말랑말랑하게 하는 것이 목표다.
케니를 향한 나의 애도는 언제까지 지속이 될지 나도 모른다.
몇 년이 더 걸릴 수 있고 평생 지속 될 수 있다.
그를 가슴에 품고 해가 뜨고 지는 순간을 함께하면서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끊임없이 묻고 찾을 것이다.
그의 몫까지 살 수 있도록 그에게 배울 수 있는 점들을 나의 일상생활에 적용해 나답게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