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척하는 그들 사이에서 언제나 나는...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척"을 해야 하는 상황들을 마주하게 된다. 나를 더욱 과시하고 싶은 마음에 하는 행동부터 하기 싫지만 억지로 하는 행동들까지 다양한 척들이 세상에는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척'이라는 행동이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곳은 단연코 회사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척
윗사람들의 비위를 잘 맞춰주는 척
진의와 다르게 행동해놓고 원래 하고 싶었던 척
약자 앞에서 주름잡으려 하는 센 척
괜스레 보여주고 싶어서 나서는 척
어쩌다 운이 좋았던 것을 마치 본인의 능력인 척
사람들은 회사라는 작은 세상 속에만 들어가면 상황에 따라 척을 하는 사람이 되곤 한다. 본래의 모습은 잊어버린 채 마치 원래 그랬던 사람처럼... 그것이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관계없이 때때로 척을 하는 그들 사이에서 언제나 이상한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나'였다.
가끔은 영화 <트루먼쇼>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다른 사람들은 잘만 하는 그 행동을 나는 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을 겪다 보면 필연적으로 해야만 하는 그 척을 이상하리만큼 잘 해내지 못했다.
가면을 쓰고 본성을 거스르는 그 능력을 아마도 신께서는 내게 부여하지 않았나 보다. 그렇게 척을 하는 그들을 보면서 더더욱 이곳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해진다.
부서 회식이 있었던 어느 날이었다. 가장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이 가운데에 자리한다. 내 눈에는 가면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들이 주변에서 하나씩 몰려든다. 그리고는 제각각의 노력을 선보인다.
술잔을 챙겨서 옆자리로 가서 기분을 맞춰주는 사람
건배사를 보이겠다며 나서는 사람
억지 텐션으로 둔갑한 채 무슨 말에든 웃는 사람
주량을 넘었지만 계속해서 술을 마시는 사람
몸에 익은 듯 자연스럽게 척을 해대는 그들 사이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 생각했다.
“여기에서 가장 이상한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구나. 여기를 나는 꼭 떠나야겠다.”
마치 사회 부적응자가 되어버린 듯한 묘한 소외감마저 들었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보며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사회생활하면서 그 정도도 못해?’
‘어차피 사람들 사이에서 일해야 하는 거 그냥 눈 한번 딱 감고 하면 되는 거 아니야?’
‘그거 하나 못해서 어디 가서 써먹기나 하겠어?’
ㅎㅎ... 맞다. 인정한다. 사람은 사회적인 존재이기에 이렇게 가면을 쓰고 행동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기본 소양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생각이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다.
‘사람들 속에서 지내는 게 참 불편하다...’
내가 너무 지쳐버린 걸까?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단순히 인간관계에서 오는 현타 같은 걸 말하려는 게 아니다. 더 이상 다른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기보다 내게 더 집중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을 뿐이다. 이 공부를 시작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배우 톰하디는 이런 말을 했다.
"잠깐 혼자 있는 것은 위험하다. 그것은 중독성이 있다. 그 평화로움을 한 번 경험하면 사람들과 다시는 관계를 맺고 싶지 않아 진다."
격하게 공감되는 이 글을 보면서 생각하고 다짐한다. 하루라도 빨리 능력을 갖춰서 혼자가 되는 저 평화로움과 중독을 반드시 느껴보겠다고.
혹시 지금 트루먼쇼의 주인공이 되어 있지는 않은가?
나를 제외한 주변을 한 번 둘러보라.
지금 어떤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지.
지금 준비 중인 모든 것을 이룬 내가 트루먼쇼에 나오는 마지막 대사를 뱉을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오늘의 글을 마쳐본다.
못 볼지도 모르니까 미리 하죠.
굿 애프터눈 굿 이브닝 굿 나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