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미완성이지만 괜찮아 다시 시작하면 돼
4월 5일 토요일 새벽 5시, 조금은 긴장되는 마음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드디어 1차 관문을 맞이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차 안에서 '시험을 치는 동안 괜히 배가 고프지 않을까', '그렇다고 많이 먹으면 또 화장실을 가느라 시험을 망치지는 않을까' 온갖 고민을 하면서 시험장으로 향했다.
1년에 한 번 있는 국가전문직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가족들과 함께 시험장에 왔다. 다들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가득해 보였다. 내 이름을 찾아서 배정받은 고사실을 확인한다. 고사실에 들어가 배정받은 자리에 착석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들 책을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한 문제라도 더 맞히기 위해, 한 지문이라도 더 파악하기 위해 책 한 줄이라도 더 훑어본다. 그 사이에서 나는 가만히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사실 '불합격'을 할 거란 생각이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9시 30분, 1교시가 시작된다. 내가 풀어야 하는 문제는 총 120문항, 주어진 시간은 2시간이었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문제지를 펼쳤다. 역시나 아는 것보다 모르는 문제가 훨씬 더 많았다. 그럼에도 나는 문제를 하나씩 최선을 다해서 읽어 나갔다. 모르는 것은 나름의 추리를 더해가며 조금이라도 더 정답에 맞는 문항을 골라냈다.
시험을 치면서 이번 시험이 어려운지 쉬운 지도 간파되지 않았다. 공부가 많이 부족했던 까닭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험생들의 한숨 소리가 하나둘씩 들려왔다. "아... 이번 시험이 꽤나 어렵게 나왔나 보구나." 생각했다. 그렇게 집중을 하다 보니 어느새 2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쉬는 시간 30분 동안 가져온 초코바를 먹으며 체력을 보충했다. 그리고 미완성의 마침표를 잘 찍겠다는 다짐을 했다. 2교시가 시작되었다. 남은 문제는 80문항, 주어진 시간은 1시간 20분이었다. 1교시보다 모르는 문제들이 밭을 이루고 있었다. 계산기를 가져온 것이 무색할 정도로 풀지 못하는 문제가 많았다. 그나마 자신이 있었던 이 과목에서조차 나는 제대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음에 가슴 한켠이 먹먹해졌다. 더더욱 나의 탈락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로 결심한다.
시험이 모두 끝났다. 후련한 마음 절반과 아쉬운 마음 절반으로 천천히 계단을 내려왔다. 수험생들의 가족들이 대기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두 팔 벌려 그들의 수험생들을 따뜻하게 맞이했다. 바깥을 나오니 아침에는 오지 않던 비바람이 불고 있었다. 마치 내 마음을 표현하는 듯했다. 적적한 마음으로 터벅터벅 걸어 내려와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사실 오늘 시험 쳤어. 그동안 공부한다고 떠들어댔던 거 있잖아... 근데 망했어. 아니 망할 거라고 이미 생각했었어. 내가 아직은 그 정도의 레벨이 아니었나 봐..."
푸념 섞인 소리를 엄마에게 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엄마의 대답.
"고생했다 아들. 엄마는 네가 공부를 하는 것도 응원하지만 지금 너의 삶에 더 집중을 하는 모습을 보고 싶기도 하구나."
엄마의 말은 틀린 말이 없었다. 지금쯤 내 나이라면 이뤘어야 할 그것들에 대한 바램과 더 이상 내가 스트레스받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들이 섞인 말이었다. 알겠다고 대답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속이 후련해졌다.
사실 얼마 전만 해도 시험을 치러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적잖이 고민했었다. 어차피 떨어질 거라는 생각에 지배되어 '괜히 시간만 낭비하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험을 치고 나서 다시 생각했다. 시험을 치러 오길 정말 잘했다고 말이다. 만약에 시험마저 치지 않았더라면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버렸을 것만 같았다. 그동안 내가 쏟아부었던 돈과 시간과 내 노력에 대한 마침표를 찍지 않았다면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올해 계획했던 내 목표는 이번 기회에는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아직 포기하긴 이르다.
이번 시험을 통해 깨달은 점이 몇 가지 있다. 현재 내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철저히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보완해야할 지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2025년도에 이뤘어야 할 목표는 끝내 이루지 못했지만 아직 내 시간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좋은 양분이 되었던 경험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지난 토요일 미완성의 마침표를 찍었지만 새로운 출발점에 다시 올라서기도 했다.
나의 시간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