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나뭇가지로 큼지막한 꿈을 새겨놓은 백사장을 다시 찾았습니다. 모래알은 그 짧은 시간에도 풍화작용을 일으켜 더욱 고운 가루가 되어 하얗게 빛나고, 바다내음이 지난 기억을 불러냅니다.
친구들이 백사장을 달음질치고, 한 소년이 모래 위에 한쪽 무릎을 대고 앉아 글씨를 씁니다. 친구들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수평선까지 멀어져가고 홀로 남은 소년은 은하수 같은 물결을 바라봅니다. 고기잡이 어선들이 한낮의 하얀 별들처럼 유영하고, 태양이 소년의 글씨 위에 금빛을 뿌립니다. 모래더미를 모아다가 글씨 위에 가득 뿌리고, 소년은 친구를 향해 달려갑니다.
그해 소년을 설레게 했던 수평선이 오늘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도 물안개가 피어오르나 봅니다. 묻혀있는 글씨를 헤쳐보고 싶은 마음을 잠시 거두고 바다를 바라봅니다. 은하수의 기억은 머릿속을 맴도는데, 호수처럼 사방이 둘러싸인 듯한 조용한 마을의 작은 물결이 눈앞에 보입니다.
바다 안개가 서서히 옅어지고 저만치 끝없는 수평선이 모습을 드러내려고 애를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