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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J Apr 26. 2022

세상 속에서

생각 하나. 이타주의마저 이기주의라면

 

 미세먼지용 마스크를 파는 사람이 미세먼지가 계속 심하기를 바란다고 해서, 그를 나무랄 수만은 없을 듯합니다. 이타적 행위를 하는 사람도 사실은 그 이타적 행위가 그에게는 즐거움이 되는, 즉 이기적이기도 한 행위를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독일의 철학자 임마뉴엘 칸트가 진정한 도덕적 가치가 있는 경우라고 언급한 것처럼, 남을 돕고 살던 사람이 그러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지만, 그런데도 남을 돕는 경우와 같이 순수한 의무감으로 이타적 행위를 하는 경우도 있고, 의무감과 즐거움을 동시에 충족하기 위해 행동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칸트는 순수한 의무감을 이기적 동기와 구별했지만, 저는 그것도 결국 자신을 위한  -'자신의 즐거움을 위한'은 아닐지라도-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의무이행의 ‘욕구’가 배제된 순수한 의무이행이 개념적으로 가능한지는 의문입니다.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극심한 혼돈상태에서 마치 아무런 욕구도 없이 기계적으로 또는 반사적으로 의무를 수행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사실 그것은 그 혼돈상태마저도 이겨내는 의무이행의 강한 욕구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며, 욕구는 그것이 이타적인 행위와 관련될지라도, 본질적으로 ‘자신을 위한’을 개념 속에 어쩔 수 없이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생물의 이타적 행위도 그 개체가 가지고 있는 유전자의 확산을 위한 이기적 행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인간에게는 이기적 유전자에 반항할 힘이 있다고도 하고, 헌혈이야말로 순수한 이타적 행위라고 생각하고 싶다고도 말하였지만, 헌혈과 같은 행위도 모종의 심리적 보상과 무관한 순수한 이타적 행위가 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이기적인 것은 인간의 본성 중 하나이고, 사회 발전의 원동력인 자유민주주의 체제도 이기주의에 근간을 두고 있으므로, 그것이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이기적이라는 자체만으로 사람을 비난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생각 둘. 무지개


무지개를 본다

고맙지만 닿지 못한 인연은 

얼마나 많은가





생각 셋. 내 나라의 땅


보행자가 지나가면 3m 전방에서 차를 멈추기보다 보행자의 무릎 30cm 금방까지 머리를 들이대는 차들을 보거나, 고개를 돌리면 옆 사람의 얼굴과 맞닿을 것 같은 빽빽한 전철 안에서, 그래도 모두 꿋꿋이 서로의 어깨 위에, 관자놀이 근처에 스마트폰을 대고 있는 풍경을 보면, –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도 쉽지 않은 콩나물 전철에 서 있다 보면 유명한 화두인 ‘이 뭣꼬’가 가끔 머릿속을 맴돕니다 – 좁은 땅에서 치열한 경쟁과 긴장 속에서 살아가는 한국인의 고단한 모습을 상징하는 것도 같습니다. 폐허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군 불사조의 나라답게, 제2의 기적을 앞둔 차세대 선도국가답게, 누구에게나 살아가는 환경은 그만큼 녹록지 않았을 것입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이곳을 떠나 이국의 드넓은 평원에서의 삶을 꿈꾸어 보았을 것 같습니다. 내 나라가 그렇게 늘 포근한 것만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의 두 발을 지탱해 준 것은 내 나라의 땅입니다. 비록 오가는 거리는 그렇게 고단했지만, 집으로 향하는 어귀에서는 고생했다며 시원한 바람 한 줄기를 늘 보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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