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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J Oct 30. 2022

증오범죄도 연방이 처벌한다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폭행하다


 <미국 v. 힐 (2019)> 사건이다. 2009년 연방의회는 증오범죄방지법(Hate Crime Act)을 제정하였다. 이 법은 통상과의 관련성이 있는 상황에서 상대방의 성적 성향 등을 이유로 신체적인 상해를 가한 자를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15년 5월, 버지니아주에 있는 아마존의 한 유통센터에서 소위 묻지마 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운송할 예정인 제품을 제임스 힐 3세라는 직원이 동료 직원들과 함께 포장하고 있었는데, 작업을 하는 도중에 그의 직장동료인 커티스 팁을 겉으로 보기에 특별한 이유 없이 폭행한 것이다. 팁이 폭행당하는 과정에서 포장물이 바닥에 흩어졌다. 팁이 흘린 바닥의 피를 치우기 위해 해당 구역에서의 작업은 30분 넘게 중단되었고, 팁은 그의 교대조에서 그가 처리해야 할 작업을 완수하지 못했다. 그러나, 다른 동료 직원들이 그를 대신하여 잔여 작업을 처리했기 때문에, 아마존은 그날의 포장 시한을 놓치지는 않아 대외적으로 지장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가해자인 힐은 나중에 팁이 동성애자여서 그를 때렸다고 거들먹거리면서 인정하였고, 이에 따라 그는 증오범죄방지법에 따라 재판에 회부되었다. 애초에 버지니아주 정부는 힐을 폭행 혐의로 입건하였으나, 증오범죄에 해당함을 인지하고 연방정부에서 증오범죄방지법에 따라 재판에 회부할 것을 요청하였다. 버지니아주의 증오범죄방지법에는 성적 성향을 이유로 한 증오범죄를 처벌하는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힐에 대한 처벌 필요성을 인정한 연방정부는 연방 증오범죄방지법에 따라 힐을 재판에 회부하였다. 


 연방지방법원의 배심원(재판에 참여하여 사실 인정에 대해 판단하는 법률전문가가 아닌 사람으로서 유죄 여부에 대한 그들의 평결은 재판부를 구속하지는 않음)은 타인의 실제 성적 성향 또는 그럴 것이라고 인식한 성적 성향을 이유로 고의로 그에게 신체적인 상해를 입혔고, 그로 인해 피해자가 그때 관여하고 있던 통상과 관련된 활동을 저해했다는 이유로 가해자 힐이 증오범죄방지법을 위반했다고 인정하여 유죄 평결을 내렸다. 힐은 증오범죄방지법의 관련 조항은 연방의회가 통상 조항이 부여한 권한을 초과하여 제정한 것이므로 해당 법률에 따라 그에게 죄를 묻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연방지방법원은 배심원의 유죄 평결과는 달리 힐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주간 통상과의 관련성이 있다면 주가 관할하는 범죄도 연방이 처벌한다


 연방정부는 항소하였고, 항소법원은 가해자인 힐의 행위가 통상 조항에 근거하여 연방의회가 규율할 수 있는 행위의 범주 안에 포함된다고 판시하며 지방법원의 판결을 뒤집었다. 연방의회가 통상 행위를 규율할 수 있다면, 통상 행위를 방해하는 폭력행위 또한 규율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항소법원은 중요한 것은 '규율되는 행위'의 통상적 속성이 아니라, ‘규율에 의해 영향을 받는’ 행위의 통상적 속성이라고 보았다. 폭행이 벌어질 당시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관여했던 작업인 다른 주에 판매될 제품의 운송을 위한 작업은 주간 통상과 관련이 있으므로, 이는 주간 통상과 관련된 증오범죄를 처벌하는 증오범죄방지법에 따라 규율할 수 있는 행위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도 법원은 개별적인 행위가 아니라 그와 동일한 가상의 행위를 전체적으로 고려한다는 종합 원칙에 따라, 개별적 행위가 실제로 통상에 대하여 실질적인 영향을 끼쳤느냐가 아니라, 본 사안과 같은 행위들이 전체적으로 누적되면 주간 통상에 실질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연방의회가 합리적으로 결정했는지 여부에 관해서만 판단하면 된다고 보았다. 


 항소법원은 로페스 및 모리슨 사례에서 쟁점이 된 법률이 연방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요건인 ‘통상과의 관련성’을 전제로 행위자를 규율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 않지만, 증오범죄방지법은 명확하게 그러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통상과의 관련성’ 요건은 각각의 사건에 따라 판단할 것을 요구한다. 즉, 고리대금 행위와 주간 통상 간의 관련성을 법률로 단정한 <미국 v. 페레스> 사례 등과 달리 이에 대한 판단을 법원에 맡긴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인종과 관련한 증오범죄를 처벌하는 다른 법률을 수정헌법 제13조의 노예제 금지 조항에 근거하여 헌법에 부합한 것으로 판단한 판례도 있듯이, 증오범죄방지법도 인종과 관련된 증오범죄는 통상과의 관련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적 성향, 성 정체성, 장애 등을 이유로 한 증오범죄와 관련해서는, 차별적 적대감에 의해 동기부여가 된 모든 폭력 범죄를 처벌하는 일반적인 권한을 연방의회에 부여한 것이 아니고, 주간 통상에 영향을 끼치는 편향된 동기의 범죄만을 처벌하도록 허용한다. 로페스 사건에서 법원은 학교 구역 내에서의 총기 소지 행위는 통상의 개념을 아무리 넓게 보아도 통상과 관련이 없다고 판단하였고, 모리슨 사건에서도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통상에 끼치는 영향은 미약해서 실질적인 영향은 없다고 보았다. 반면에 이 사건에서는, 그 행위가 경제적 행위인지 여부와 상관없이, 규율되는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그 행위가 끼치는 영향을 기준으로 주간 통상과의 관련성을 인정한 것이다. 


 물론 이 판결에 대해서도 비판이 가능하다. 집합적으로 주간 통상에 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비경제적인 행위를 규율한다면, 사실상 우리의 모든 행위가 어떤 방식으로든 통상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연방의회가 모든 생활 국면을 통제할 우려가 있고, 행위의 속성이 아니라 행위에 의한 영향만을 기준으로 하게 되면, 본 사안에서 반드시 피해자가 통상과 관련된 작업을 진행 중일 필요도 없으며, 일상생활 중에도 그에 대한 폭행이 통상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 예를 들면, 가게에 가서 다른 주에서 생산된 물건을 사지 못하는 등 - 비경제적 행위를 통상 조항에 근거하여 규율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는 ‘실질적인 영향’ 여부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넓게 보면 모두 통상과 관련되어 있지만, (A) 흑인의 투숙을 금지하는 모텔이 있는 지역으로 흑인이 여행을 자제하는 경우나 다른 주에 판매할 제품에 관한 작업을 하는 근로자를 폭행함으로써 주간 통상과 관련된 사업에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와 (B) 여성에 대한 성폭행, 일상생활 도중에 발생한 증오범죄로 인해 피해자가 주간 여행이나 다른 주에서 생산된 상품의 구매를 덜 할 수도 있다는 경우는 구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쨌든, 본 사례 역시 연방의회가 제정한 총기금지학교구역법과 여성폭력방지법의 관련 조항을 위헌으로 판결한 기존의 연방대법원 판례에도 불구하고 통상 조항에 근거한 연방의회의 여전한 입법 권한을 보여주는 경우라고 할 수 있고, 항소법원의 판결이긴 하지만, 경제적 행위가 주간 통상에 영향을 끼칠 경우 연방의 규율을 인정했던 과거의 판례보다 더 나아가서 범죄 행위와 같은 비경제적인 행위까지도 통상 조항에 근거하여 규율하는 권한을 인정한 판례라고 하겠다.





여성폭력방지법은 위헌이고 증오범죄방지법은 합헌인 이유


 똑같이 사람에 대한 폭력을 규제하는 연방 법률이지만, 여성폭력방지법의 해당 조항은 연방대법원으로부터 헌법을 위반했다는 판결을 받았고, 증오범죄방지법은 헌법에 부합한다는 판결을 받았는데, 판결의 차이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주간 통상과의 관련성 여부에서 비롯된 것이다. 주간 통상과의 관련성을 판단하는 명확한 선을 긋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고 판단하는 기준에 따라 그 인정 범위가 달라질 수 있다. 관련성의 인정 범위를 무한정 확대하면, 이 세상에 서로 관련 없는 일은 하나도 없게 되고, 결국 연방이 미국인의 모든 생활 국면을 규율할 수 있게 되는 것인데, 이는 연방은 헌법에 명시된 권한만을 행사할 수 있다는 헌법 정신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연방과 주 사이의 적절한 권한 배분을 성공적인 운영원리로 삼고 있는 연방 체제를 해롭게 할 수 있으며, 필요 이상으로 중앙집권을 초래하는 것은 연방국을 구성하는 각 주를 ‘묶는’ 것이 아니라 ‘합치는’, 즉 주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결과가 되어 연방제의 근간을 위협할 수 있다. 그러한 점에서 주간 통상과의 관련성을 합리적인 기준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는데, 여성폭력방지법의 해당 조항이 헌법을 위반한다는, 즉 헌법의 통상 조항에 근거하여 연방의회가 규율할 수 있는 범위를 초과했다고 본 연방대법원의 논리는 이에 바탕을 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범죄와 관련된 규제 및 피해자에 대한 보호는 기본적으로 주의 소관 사항인데, 여성폭력방지법에서 피해자에게 연방법원에서의 손해배상 등 민사적 구제를 허용한 조항이 헌법에 부합한다는 평가를 받으려면,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주간 통상과 실질적인 관련성이 있다는 점이 인정되거나, 다른 헌법적 근거가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여성폭력방지법 중 <여성의 민권> 부분에서 그 제정 목적을 성적 동기에 의한 폭력 범죄로 피해를 본 여성에게 연방법원에 민사적 구제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그러한 피해자의 민권을 보호하고 공공의 안전과 보건, 주간 통상에 영향을 끼치는 행위를 증진하는 것이라고 하여 주간 통상과의 관련성을 모호한 표현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합리적으로 추론해 보았을 때, 성범죄와 주간 통상과의 관련성은 연결이 되지 않는다.

여성폭력방지법이 일반적 상황에서의 성범죄 피해자에게 연방법원의 민사적 구제를 허용하는 구조가 아니라 통상과의 관련성이 있는 경우에 제한적으로 이를 허용하는 구조를 취했다면 헌법에 부합한다는 판단을 받았을 것이다. 반면, 증오범죄방지법은 범행 당시에 피해자가 관여한 통상적 행위를 방해하는 등 성적 성향을 이유로 한 증오범죄의 가해자를 연방이 처벌할 수 있는 요건, 즉 통상과의 관련성을 기술하고 있고, 본 사안에서 다른 주에 유통될 제품을 포장하는 근로자에 대한 폭행으로 인해 기업의 활동이 위축되어 주간 통상이 저해될 수 있다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하다. 


 이처럼 통상과의 실질적인 관련성을 요구하는 것은 통상 조항에 근거한 연방의회의 규율 권한을 위축시키는 것이 아니라, 통상과 관련이 없는 사안까지 무한정하게 확대될 수 있는 연방의회의 반헌법적이고 전제적인 통치의 위험성을 제거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비경제적인 범죄 행위마저도 통상 조항으로 규율하다 


 주요 사례에 대한 연방대법원의 판결 흐름을 보면, 기존에 통상 조항에 근거한 연방의회의 적법한 규율로 인정된 사례들은 비록 주 내에서의 행위일지라도 통상에 영향을 끼치는 행위일 뿐 아니라 행위 자체의 속성도 경제적이었다. 그 후, 총기 소지를 다룬 <미국 v. 로페스>, 성범죄를 다룬 <미국 v. 모리슨> 사례에서 행위의 영향뿐 아니라 행위의 속성 자체가 비경제적인 면에도 주목하여 통상과의 관련성을 부인하였고, 대마초 공급자에 대한 강도 행위를 다룬 <테일러 v. 미국>, 성적 동기의 증오범죄를 다룬 <미국 v. 힐> 등의 사례에서 행위의 속성이 경제적이지 않다고 하더라도 행위의 영향을 기준으로 통상과의 관련성을 인정하였다. 로페스 및 모리슨 사례가 행위의 속성도 고려하였지만, 통상에 대한 영향만을 기준으로 판단하더라도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고 본다.



[미국 법전 18편 249조] 증오범죄방지법


(a) 일반

실제의 또는 그럴 것으로 인식한 종교, 국적, 성, 성적 성향, 성적 정체성, 장애와 관련된 범죄

(A) 일반 – 누구든지 실제의 또는 그럴 것으로 인식한 종교, 국적, 성, 성적 성향, 성적 정체성, 또는 장애를 이유로 (B) 또는 (3) 절에서 기술한 상황*에서 고의로 사람에게 신체적 손상을 입히거나, 불, 화기, 위험한 무기, 폭발물, 소이탄의 사용을 통하여 사람에게 신체적 손상을 입히려고 하는 자는 (1) 10년 이하의 감옥형에 처하거나 본 편에 따라 벌금형에 처한다. 또는 양자를 병과한다. (2) 범행으로부터 피해자가 사망하는 결과가 발생하거나 범행이 유괴 또는 유괴 미수, 가중된 성적 학대, 가중된 성적 학대 미수, 또는 살인미수를 포함하는 경우에는 유기징역 또는 종신형에 처한다.


미국의 특별 해상  영토 관할 구역에서의 범죄 발생


(B) 상황 – (A)의 목적과 관련하여, 그 상황은 (1) (A)에서 기술한 행위가 피고인이나 피해자가 여행하는 중이거나 그 결과로 발생하는 경우, (2) (A)에서 기술한 행위와 관련하여 피고인이 주간 또는 외국과의 통상과 관련된 경로, 시설, 매체를 사용하는 경우 (3) (A)에서 기술한 행위와 관련하여, 피고인이 주간 또는 외국과의 통상에 의해 유입된 화기, 위험한 무기, 폭발물, 소이탄, 기타 무기를 사용하는 경우, (4) (A)에서 기술한 행위가 그 행위 당시에 피해자가 관여한 통상적 기타 경제적 행위를 방해하거나 기타 주간 또는 외국과의 통상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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