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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계인총각 Aug 03. 2022

여름_3. 아들이 준 선물

국제학교 도전기1. Meritton International School

아들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국제학교에 갔다.

정확하게는 국제학교에서 운영하는 여름방학캠프.

나보다 17년 정도 빠르다. 나는 대학 3~4학년 때 학교의 배려로 겨울방학 동안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Sunway College를 다닌 적이 있다.

아들의 첫 번째 국제학교는 태국 치앙마이 '항동' 지역에 있는 'Meritton British International School'(이하 메리튼)이다.

주 5일,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 30분까지 캠프를 진행했다. 아들은 6~8세 과정에 등록했다.

캠프 주제는 Play, Learn, Fun. 점심과 간식까지 합쳐 총 7000바트. 우리 돈 약 25만 원이다.

캠프 때는 스쿨버스를 운영하지 않아 그랩을 타고 다녔다. 그랩 비용은 왕복으로 하루 최대 8000원 정도.


메리튼은 큰 규모를 자랑하는 학교는 아니다.

정적인 분위기로 교정 내외가 잘 관리됐다. 등하굣길에 만났던 태국인 스태프들이 모두 젊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대부분 영어 원어민이다.

캠프에 참여하는 아이들은 15명 안팎이다. 중국인과 태국인이 대부분이었다. 아들이 유일한 한국인이었다. 그래서인지 모든 직원들이 아들은 물론 나에게도 큰 관심을 가져주었다. 특별 대우를 해준 것은 없지만 관심 자체가 특별 대우를 받는 느낌이었다. 감사한 일이다.

아들의 말에 따르면 담임 선생님 같은 분이 계시고, 액티비티에 따라 다른 선생님이 수업을 진행했다. 어떻게 수업하는지도 물었다. 물론 캠프 커리큘럼은 오픈돼 있다.

아들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그냥 놀더라. 계속 놀아서 좋아"

"말 안 해도 되고, 혼자 놀아도 되고."

"점심 먹고 영화도 봤어"

"선생님들이 착하더라. 혼내지도 않고. 한국(학교) 보다 좋아"

"점심 먹고 또 놀아"

"내일도 가고 싶어"


소통을 걱정했지만 의외의 답이 나와 황당했다.

'말을 안 해도 된다니...'

아이들은 어른의 생각을 뛰어넘는다. 하지만 이것이 아들이 발견한 생존 방식이었고 나는 존중하고 격려했다.

말하는 것은 그렇다고 해도 말을 알아들어야 놀 때 놀고, 먹을 때 먹고, 싸고 싶을 때 쌀 텐데,

하루 6시간을 견뎌낸 것을 보면 나에게 표현을 못한 자신만의 또 다른 생존 방식도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영어 학습에 대한 기대는 없었던 터라, 그저 잘 지내준 아들이 기특했다.

닷새간의 짧은 시간이지만, 그 사이 아들이 외국인 친구도 사귀었다. 

Toby(토비). 엄마는 태국인이고 아빠는 벨기에 사람이다. 나이도 같고 노는 성향도 같아서 학교에서 잘 어울려 놀았던 것 같다.

토비는 벨기에에 사는데 방학이어서 치앙마이에 왔다. 아들처럼 치앙마이에 친구가 없다. 토비는 주 언어는 네덜란드 말이다. 영어 말하기는 서툴지만 그래도 '할 줄' 안다. 듣기는 부모의 영향 때문인지 나와 토비 엄마, 토비 아빠가 말하는 내용을 대부분 이해했다.


캠프 마지막 날 우연히 하굣길에 토비 엄마를 만났다. 토비 엄마는 다른 친구에게 줄 토비의 편지를 갖고 왔는데, 그 친구가 내 아들인 줄 알고 잠깐 인사를 나눈 게 인연이 됐다.

나는 어쩌면 다시 못 올지도 모르는 이곳과 지금 이 순간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아들과 함께 학교 앞 커피숍에서 잠시 쉬었다. 평소 커피숍을 싫어하는 아들도 메리튼을 떠나는 게 아쉬운지 순순히 따라나섰다.


그때 토비 엄마와 토비가 우리를 찾아 들어왔다. 아들의 그늘진 얼굴이 다시 밝아졌다. 토비 엄마와 많은 얘기를 나눴고 코드가 맞는지 금세 친해졌다.

토비 엄마의 말과 행동에서 품위가 느껴졌다. 토비 엄마는 차로 우리 숙소까지 바래다줬다.

토비 엄마는 치앙마이대학교를 나와 중국에서 공부하고 싱가포르에서 일을 했다. (치앙마이 거주자에 따르면 치앙마이대학교는 우리나라의 연세대와 고려대 같은 곳이다.)토비 아빠와 중국에서 만났고 싱가포르에서 같이 일을 했다고 한다.

저녁에는 토비 아빠에게 연락이 왔다. 토비 아빠는 벨기에 한 은행에서 IT 전문가로 일하고 있다. 네덜란드어가 모국어이고 영어, 프랑스어도 능숙하다. 중국어는 많이 잊어버렸다고 한다.

나중에 시간을 내서 아이들을 만나게 해주자고 했다. 그리고 그 주 일요일에 토비 아빠가 머무는 숙소에서 아이도, 어른도 좋은 시간을 보냈다.


이게 내가 상상해온 치앙마이 생활이었는데 기적처럼 모든 게 이뤄졌다. 놀랍고 감사하지만 내심 불안하기도 했다.

'나에게 이렇게 좋은 일이 생겨도 될까.'

'아들이 나에게 준 선물이 아닐까.'

그렇게 우리는 치앙마이에서 훌륭한 1주일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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