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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낱낱 Aug 12. 2024

오빠의 동생

'남해소년' 7화

내려올 때도 비행기를 이용했던 시현은 사천공항으로 가는 중에 있는 진교에 잠시 들러 나를 내려주었다.


"내일 서울 올라가서 연락할게, 시현"


"그래 꼭 찾길 바라! 수빈아, 먼저 올라갈게."


헤어진 시현을 뒤로하고 자연스럽게 바통터치가 이뤄졌다. 바쁜 명희는 더 바쁜 나를 데리러 진교까지 마중 나와있었다. 만나자마자 으르렁대는 명희에게 순천에서 사 온 녹차 박스를 건넸다.


"내는 녹차 안 마신다, 녹차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고 안 했나!"


"아이스크림도 사줄게, 그럼 되냐?"


"어떻게 준비는 잘 됐어? 다 알아봤어? 나 바쁜 사람이라고!"


내일까지 알아보라으름장을 놓은 지가 이미 이틀이 지난 지금이기에 명희에게는 충분한 시간을 줬다고 생각했다. 잠시 뜸을 들이며 딴 소리를 늘어놓던 명희는 걱정 말라는 듯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아이스크림부터 먼저 먹으면 안 될까?"


"앗, 근데 왜 이 길로 왔어! 남해대교 안 건너고!"


나의 다그침에 딴소리만 하던 명희는 액셀 페달을 세게 밟았다. 노량대교를 건너는 차창 밖으로 어릴 적 건너 다닐 때는 그렇게 커 보였던 남해대교가 그 곁에서 앙증맞지만 꼿꼿하게 서있었다.


"여그가 빨라서 여그로 왔제, 요즘은 다 이 다리로 댕긴다! 내도 남해대교 건너본 지가 언제고 모르겠데이"


"빠르다고 다 좋은 게 아니야, 명희야"


"머라카노 진짜, 바쁘다꼬 지랄할 때는 언제고"


"친구한테 지랄이 뭐니, 넌! 낭만이 없네, 명희는..."


"어이가 읎네, 임수빈이는!"


그때부터 시작된 명희의 배구부 오빠들 비하인드 스토리는 읍내에 있는 아이스크림 매장에서 계속 이어졌다.


"그래 알겠고, 배구부 오빠들 연애 뒷얘기는 그만하고!"


"내가 누구닙꺼? 싹 다 연락해봤제! 그중에 내 친구가 딱 얘길 하더라고!"


"그이까, 이 오빠는 한 살 우에 배구부 선배인데, 내랑 같은 반 친구가 그 오빠 동생이었거든"


그녀가 가져온 것은 먼지가 다 가시지 않은 친구 오빠의 중학교 졸업앨범이었다. 그중 유난히 반짝이는 프로필 사진 속 그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 프로필 아래로는 '남우'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갸 이름은 연선화라 카는데, 내가 어제 통화를 해봤다 아이가!"


"그래서, 뭐래? 오빠한테 물어봤데? 팔찌에 대해서!"


"어, 오전에 선화가 연락을 해왔데이"


"오빠가 팔찌를 받은 기억이..."


.

.

.

.

.

.


"난. 다. 고"


"뭐? 기억이 난다고?"


난 까무러칠 뻔한 정신줄을 간신히 부여잡고, 재차 확인했다. 그 해 여름이 맞느냐고, 정말 그때 그 순간 거기에 있던 사람이 맞냐고. 주저함 없이 명희는 다시 한번 답을 해주었다. 아무래도 틀림없이 맞는 것 같다고. 이거 너무 쉽게 찾는 거 아닌가 싶어 믿어지지가 않았다.


이제 남은 일은 그를 만나면 되는 것이다. 만나서 물어보면 바로 답이 나올 테니까. 그러고 나서 잠시 상상을 해봤다, 그를 만나는 장면을. 근데 막상 만난다니 왜 만나는지, 뭐가 궁금해서 만나는지, 뭘 물어볼지, 어떤 대화가 가능할지 전혀 떠올려지지가 않았다. 왜 만나는 거지 라는 원천적인 질문이 나의 가슴을 무겁게 눌렀다.


"온다카네 , 지금 메시지가 왔데이!"


"누가? 정말 그 오빠가? 지금?"


"아니, 오빠는 아이고, 그 친구 말이다"


"아, 그래. 뭐 오히려 부담 없이 좋을 거 같네"


부담은 없을 수 있지만 내가 원하는 장면은 전혀 아니었다. 늘 꿈꿔오던 순간이 오늘 펼쳐지나 했는데, 그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실망은 하지 않았다. 이 정도면 정말 성공한 거란 생각에 충분히 기뻤다. 아니 기뻐하기로 했다.


녹차 아이스크림이 바닥을 보일 무렵 명희 어깨너머로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한 여성이 보였다. 그녀는 가녀린 팔뚝이 드러난 하얀 원피스를 입고, 깔끔한 슬립온을 발에 걸치고 두리번대면서 다가왔다. 저 친구가 선화구나, 내가 상상하던 모습은 전혀 아니었다.


"저 오빠는 지금 마 교육받으러 가서 며칠 있다가 돌아올 거예요"


"물어보실 거 있으시면 내한테 일단 물어보세요"


그녀는 사투리를 쓰지 않으려 애쓰며 자신의 오빠를 잠시 소개했다. 배구를 계속하다가 대학교에서 교직을 이수하고 나와서는 운동은 그만두고, 교사의 길을 걷고 있다고 했다. 현재 그는 읍내 한 중학교에서 체육교사를 하고 있는데, 방학기간 동안 교육 연수차 서울에 올라갔다고 전했다.


"저 혹시 팔찌에 대한 얘기는 들어보셨어요?"


나는 처음 보는 선화 씨에게 다짜고짜 청문회 하듯이 따지며 물었다.


"집에 오빠 책상이 있는데, 어려부터 쓰던 책상이거든요."


"근데 제가 어렸을 적에 맨날 오빠 책상 뒤지고 노는 게 낙이었걸랑요."


처음 보는 사이였지만 그녀는 낯가림도 없이 얘기를 술술 풀어냈다.


"아, 그러세요? 그래서요 팔찌는?"


"그때 책상 서랍 속에 팔찌가 하나 들어 있었는데. 내가 막 차고 돌아다니고 그랬었걸랑요"


"그캐서 맨날 혼나고 깨지고 그랬긴 헙니다." "큭큭"


"그래서 이건 누구 끼고? 물어보기도 했는데, 대답은 안 해주더라고요"


"그래요? 그건 그럼 집 책상에 있다는 건가요? 볼 수 있어요?"


"아니요 지금은 책상 서랍에 없는 거 같더라고요, 제가 확인차 오빠랑 통화를 해봤거든요"


"뭐라고 하던가요? 아직 갖고 있대요?"


"그게..."


"갖고 있었는데"


선화라고 하는 동생은 머뭇머뭇거리며, 빈 아이스크림 통을 내려다보며 입을 쩝쩝거렸다.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옆에 앉아 듣고 있던 명희에게 아이스크림 하나를 주문하라고 등을 떠밀어 보내고는 그녀의 막힌 입을 다시 열게 만들었다. 투덜대며 명희가 일어서자 나는 선화에게 다시 추궁을 이어갔다.


"네? 갖고 있었는데 뭐요?"


"근데, 지금은 없대요."


"엥? 없다고요? 있었는데, 없.다.고.요?"


왜 이 시점인지 모르겠지만, 그 역시 최근 들어 꽤나 찾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 팔찌의 주인을. 선화의 오빠는 임용고시 준비부터 해서, 외지에서 첫 교직 생활에 적응하느라 바빴고, 최근 들어 이곳 고향의 학교로 옮긴 후 여유가 생겨 그 주인을 수소문했다고 했다. 그러고는 통화에서 그 주인을 찾았다고 전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그럼 나를 찾았다는 건가? 아니면 설마, 희주를? 진짜 주인을 찾았다는 말인가? 나는 갑자기 소름이 끼쳤다.


"누구를 찾았다는 거죠? 도대체?"


"주인이요!"


"그니까 그 주인이 누군데요?"


"그건 내는 모르지요."


"근데 혹시 성함이 우째 되세요?"


나의 이름을 묻는 이 친구한테 더 이상 확인하는 게 의미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한숨이 나왔다. 이 오빠는 내가 이 팔찌의 주인이 아니란 걸 이미 알고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내가 이렇게 팔찌 주인도 아니면서 어릴 적 한 번 본 소년을 찾아다니는 정말 창피하고 부끄럽고 무안한 일을 벌이고 다녔던 것인가. 

한 발 늦었다는 생각에 속이 쓰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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