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의 시작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 잠깐 쉬려고 잡지 코너로 향했다. 거기서 손에 잡히는 대로 마음에 끌리는 대로 다양한 잡지를 꺼내 들었다. 패션, 틴, 생활, 요리...... 지겹고 따분하고 버거운 내 현실과는 다르게 잡지에 실린 다양한 내용들은 흥미롭고 즐거워 보였다.
'나도 이렇게 살고 싶은데...' 하는 마음이 들었다.
도서관 내 자리로 돌아와 잠시 책을 옆으로 밀어 두고 내가 미래에 어떤 직업을 가지면 행복할지, 아니 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수첩에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직은 아무 능력이 없는 고등학생이지만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써 내려가는 것만으로 방전된 배터리가 한 칸씩 차오르는 느낌, 살아있는 생동감이 느껴졌다.
수첩에는 마음에 끌리는 직업들과 멋지게 사는 여성들의 직업들을 다양하게 적기 시작했다.
통역하는 여자,
번역가,
신문기자,
잡지사 기자나 편집,
건축 다지이너,
해외로 비행기 타며 출장 다니는 여성,
선생님이나 강사,
작가
......
이렇게 적고 나니 무엇을 목표로 살아가야 할지, 무엇을 공부해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하얀 도화지 위에 노란 크레파스로 밑그림을 그리고 나면 어떤 색을 골라 색칠할지 조금 설레는 것처럼.
외국유학은 그렇게 계획되었다. 단 한 번도 외국에 나가서 공부를 할 것이라고 스스로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만 부모님은 더더욱 그랬다. 그러다 보니 꿈에 대해 부모님과 대화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빠는 가장 안정적인 공무원이나 선생님이 되길 원하셨고, 엄마는 대학은 그냥 결혼을 잘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셨기 때문에 나의 '꿈'은 그야말로 서로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대화의 주제가 되어 버렸다.
그때 알았다. 부모님은 부모님의 인생경험으로 나에게 좋은 것을 권하지만 그것이 결코 내가 원하는 인생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아빠의 말대로 선생님, 공무원이 되는 것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생각만 해도 매일 반복적으로 똑같은 일을 한다고 생각하니 숨이 막혀왔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도 그렇다. 학교에서 늘 같은 것을 가르치는 일에 보람이 느껴지지 않을 것 같았다. 단 하나, 방학을 즐길 수 있는 장점은 있지만 그 방학 때문에 내키지 않는 일을 하며 인생을 후회하며 살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시키는 대로 진학을 했으면 순조로운 인생이었을지 모르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내가 누구인지,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명확하게 아는 시간이 되었다. 되돌아보니 말이다.
내가 가장 먼저 도전해 보고 싶은 직업은 통역과 번역일이었다. 언어는 일본어. 일본어로 된 만화책도 자유롭게 읽을 수 있고, 그 당시 유행했던 논노(nonno) 잡지도 도대체 뭐라고 쓰여 있는지 궁금했다. 일본 영화나 음악도 자유롭게 접할 수 있고 돈 버는 직업도 가질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뜨거워졌다.
적어도 직업이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 때 행복한 것이 아닌가. 그걸 어떻게 다른 사람이 정할 수 있단 말인가. '잠시'라는 시간도 아니고 '평생'이란 시간을 일해야 한다며 더더욱 말이다. 일본 유학을 가기까지 순탄하지 않았지만 결국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일본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지금까지 프리랜서로 20년 넘게 살아왔다. 나이가 들수록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도서관에서 수첩에 써 내려간 나의 꿈에 대한 메모. 그 작은 메모가 오늘 나를 있게 만들었다.
프리랜서.
나는 나의 직업을 좋아한다. 왜냐면 가장 '나답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프리랜서가 되기를 원한다면 기꺼이 응원해 주고 싶다. 후회 없는 인생은 없지만 후회하는 시간은 줄일 수 있을지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