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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재 Dec 26. 2022

[프롤로그] 내 맘대로 인생 편집

맘에 들지 않는 인생? 편집하면 돼요


"아, 그건 그냥 편집으로 하면 돼요."



에디터로 일하던 시절 촬영장에서 자주 했던 말입니다. 델의 표정 동작이 부자연스럽거나 말을 더듬때, 혹은 모델의 피부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원하 분위기가 나오지 않을 때. 촬영 현장이 매끄럽게 흘러가지 않을 때마다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편집'이란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어요. '편집'의 힘을 믿지 않는다면 촬영 맘 편히 마무리할 수 없겠죠.


스크린 속 광고 영상을 보면 현실에선 느끼기 힘든 비현실적인 에너지를 느낄 수 있어요. 특히 뷰티 제품을 광고하는 연예인은 도자기처럼 매끈한 피부를 뽐내 세상 모든 것을 포용해 줄 것 같은 우아한 미소를 짓고 마치 우리와 같은 인간이 아닌듯한 '여신의 아우라'를 풍기죠. 그 아름답고 완벽한 모습은 광고 속 제품들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해요. 그 화장품을 사용하면 스크린 속 그녀의 모습처럼 피부가 완벽해질 것 같고, 그 청소기를 쓰면 집이 광고 속 모습처럼 깨끗해질 거란 생각이 들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실제 연예인의 피부는 스크린 속 모습처럼 완벽하지 않고, 항상 그렇게 밝은 표정만 짓는 것은 아니며, 단 한 번의 시도만에 완벽하게 촬영된 것도 아니에요.


업계 밖 사람들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답고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완성본을 보지만, 편집을 하기 전 촬영 원본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영상에서 느껴지는 대부분의 에너지는 후반 작업과정, 즉 편집자의 손에서 만들어져요. 속도의 조절, 크롭, 컷 타이밍, 색감, 사운드 조정 등의 복잡한 후반 제작 과정을 통해 현실을 극대화시키고 비현실적인 에너지를 만들어내죠.


편집은 나무토막처럼 무미건조한 영상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에요. 원재료를 다양한 단계로 조리해 한 그릇의 음식으로 만들어내는 요리사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죠. 요리와 편집의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원재료를 준비하는 시간과 후반 작업에 들어가는 노력의 비율입니다. 요리를 할 땐 요리사의 조리 과정보다 원재료를 키워내는 농부의 작업이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영상 제작의 경우엔 원재료인 영상 촬영보다 후반 작업에 더 많은 시간과 복잡한 공정을 필요로 해요. 다큐멘터리 같은 특수한 영상의 경우를 제외한 보통의 광고 영상은 하루 이틀이면 촬영이 끝나지만, 후반 작업엔 빠르면 1주, 길면 한 달이 넘는 시간이 소요되기도 합니다.


편집 감독은 이 긴 시간 동안 날 것의 피부를 도자기처럼 매끈하게 만들고, 어색한 부분을 모두 잘라내고 이어 붙이고 속도를 조절해 완벽한 컷으로 재창조하고, 색감을 예쁘게 조정하고, 영상의 분위기를 좌우할 음악을 고르고 그래픽과 자막을 비롯한 여러 효과를 더해 영상이 주는 에너지를 극대화해요. 그 후에도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의 컨펌, 끝없는 수정을 거쳐야지만 비로소 대중에게 공개할 수 있는 영상과 이미지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사실상 세상 모든 것이 편집입니다. 오늘 우리가 처리해 낸 모든 업무, 모든 창작활동은 머릿속 정보들을 편집하고 정리하는 일과 같아요. 글 또한 마찬가지죠. 처음 초고 그대로 출판을 하는 작가가 존재할까요? 세상 모든 작가의 글이 무수한 퇴고와 편집자를 거칩니다.



우리 모두의 인생도 이런 편집 과정이 필요합니다


조금의 편집도 없이 태어나던 날의 모습 그대로 이어지는 인생은 없죠. 우리 모두가 살면서 약간의 편집과 수정을 반복하며 살아갑니다. 전 그렇게 좋은 인생을 만드는 과정이 좋은 영상을 만드는 과정과 같다고 느낍니다. 유일한 차이점 한 가지는 영상은 이미 과거에 촬영된 것을 편집하는 것이고, 인생 편집은 앞으로 일어날 미래의 것을 편집하는 것이라는 사실뿐이에요.


누군가는 이 과정을 편집이 아닌 자신의 전문 분야에 빗대어 설명할 수도 있겠죠. 마케터는 '세상 모든 것은 마케팅의 일종'이라 하고, 예술가는 '세상 모든 것은 창작의 과정'이라고 생각할 거예요. 하지만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편집이기에 편집 과정으로 얘기하려 합니다.


10년간 패션 에디터와 광고 영상 편집 감독으로 일하며 수백 편의 광고 영상을 제작했고, 이 과정에서 습득한 영상 편집 노하우와 이에 빗댄 인생 편집 과정을 곁들여보려고 합니다. 저는 이 책이 자기 계발의 탈을 쓴 편집 교재, 편집 교재의 탈을 쓴 자기 계발서가 될 거란 예감이 들어요. 정의할 수 없는 혼종? 그렇다면 오히려 좋습니다. 전업 편집자의 작업 과정이 궁금하거나, 자기 계발을 원하거나. 여러분이 제 글을 읽어주는 이유가 무엇이든 원했던 것을 가져갈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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