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정신 차려, 엄지야
SNS 이용시간을 제한하기로 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인스타그램을 연다. 앱에서 내 하루 평균 이용시간을 볼 수 있는데 그게 자그마치 두 시간이었다.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의 15%가 넘는 시간이다.
SNS를 보는 것은 내 주변 사람들의 소식이 궁금해서도, 심심해서도 아니었다. 습관적으로 다리를 떨듯 그저 무의식적으로 열어보는 것이다. 의심의 여지없는 SNS 중독이었다.
엄지의 저주
스마트폰 화면을 열면 내 엄지는 마치 귀신 들린 것처럼 자동적으로 SNS 앱을 연다. 다른 목적을 위해 폰을 집은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은행 업무를 보기 위해 화면을 켰을 때도, 무언가 검색할 게 있을 때도 스마트폰을 집기만 하면 일단 나도 모르게 인스타그램부터 열었다가 황급히 닫는다.
아마 눈을 감고 있어도 스마트폰 화면에서 SNS 앱의 위치를 정확히 터치할 수 있을 것이다. 몽유병 병력이 있었기에 잠결에 SNS를 열어본 적이 있을 거란 생각마저 들었다. 자면서 이를 갈거나 코를 고는 걸 자신은 알 수 없으니까. 그만큼 증상의 심각성이 느껴졌고, 당장 이 엄지의 저주를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중독자의 구차한 변명
내 직업은 광고 영상 편집자다. 바이럴 영상을 주로 만들기에 SNS는 밥벌이에 필수적인 플랫폼이다. SNS에서 다른 영상들을 보며 트렌드를 파악하고, 잘 만든 영상이 있으면 작업 레퍼런스로 저장해둔다. 그러니 내게 SNS를 보는 건 아예 쓸모없는 일 만은 아니다.
아마 당신도 나름의 핑계를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합리화는 중독자들의 특성이다.
솔직히, 두 시간 동안 보는 수많은 게시물 중에 작업에 도움이 되는 것은 열 개 중 한두 개꼴이었고 나머지는 그저 웃긴 밈이나 귀여운 동물 영상들이었다. SNS를 아예 끊을 순 없더라도, 적어도 '둘러보기'에서 오락용 밈을 보는 시간만은 줄여야 했다.
모든 일과를 더디게 하는 SNS
식사를 할 때, 일을 하는 도중에도, 심지어 다른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도 틈만 나면 SNS를 열었다. 아마 하루에 물을 마시는 횟수보다 SNS를 열어보는 횟수가 더 많을 것이다. 밥 차리는 도중에, 먹는 도중에, 치우는 중에. 중간중간 수도 없이 스마트폰 화면을 켜고 SNS 앱을 열었다. 시계부를 쓸 때 밥을 차려먹고 치우는 시간이 총 1시간 정도였는데, 이중 SNS를 보는 시간이 적어도 10-20분은 되는 것 같았다.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컴퓨터가 켜지는 10초 남짓한 그 짧은 순간도 참지 못하고 스마트폰을 집어 든다. 한번 앱을 열면 끊임없이 스크롤을 내리며 5-10분 정도는 보게 되니, 컴퓨터 화면이 켜지고 나서도 한참 뒤에야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프로그램 로딩 중에도, 영상을 렌더링 할 때도. 진작에 할 일을 끝낸 컴퓨터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날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다른 일과 중에도 이런 상황은 반복됐다. SNS는 모든 일의 속도를 더디게 했다.
시간 블랙홀
특히 어딘가에 '누워있을 때'가 가장 심했다. 누워서 SNS 보기는 '시간 블랙홀'이었다. 어딘가에 누워 편안한 자세로 아무 생각 없이 스크롤을 내리다 보면 마치 명상을 하는 듯 평온해졌고, 시간이 스크린 속으로 훌쩍 빨려 들어갔다.
잠들기 전엔 무려 한 시간씩 SNS를 봤다. 불을 끈 상태에서 스마트폰 화면을 보니 시력에도 좋을 리 없었다. 가뜩이나 하루 종일 모니터를 봐야 하는 직업 때문에 눈이 좋지 않았는데 점점 더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했다. 안경 렌즈를 새로 맞추러 갈 때마다 검안사 아저씨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보통 20살 이후엔 웬만해선 이렇게 시력이 나빠지지 않아요"
SNS 이용 시간을 줄여야 하는 이유는 이렇게 차고도 넘쳤다.
이용시간 제한을 걸었다
알다시피 SNS 중독의 심각성이 수면 위에 떠오른 지는 꽤 오래됐다. 미국에선 1년에도 몇 번씩 SNS 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이 일어난다. 청소년 학부모들이 SNS가 자녀들의 삶을 망쳤다며 소송을 걸기도 하고, 무분별한 SNS 게시물에 심리적 착취를 당해 자녀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소송 사례도 있다.
이런 소송들 때문인지 인스타그램은 1년 전 '이용시간제한' 기능을 추가했다. 본인이 일정 시간을 설정해놓으면 이 이상으로 사용했을 경우 알람을 보내주는 서비스다. 한 번에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을 제한하는 '휴식 알림'과 하루 전체 이용 시간을 제한하는 '일일 시간제한 설정'이 있다.
너무 한 번에 끊게 되면 금단증상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어 처음엔 가볍게 시작해보기로 했다. 일단 휴식 알림을 10분, 일일 시간을 1시간으로 설정했다. 이용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걸 의식해서인지 이 제한시간을 지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휴식 알림이 켜진 적은 몇 번 있지만 일일 시간을 넘기는 일은 없었다.
치료 약물을 투여하고 경과를 보며 약의 용량을 조절하듯이, 일정 기간마다 이용제한시간을 조정해보기로 했다. 처음 시도에서 금단 증상이 전혀 발현되지 않았으니 조금 더 줄여봐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렇게 조금씩 이용시간을 차츰 줄여갔고 반년이 지난 지금은 일일 제한시간 15분으로 생활 중이다.
하루가 길어졌다
일주일에 며칠만이라도, 어떤 날은 SNS를 단 한 번도 열지 않게 되는 것이 목표다. 안타깝게도 아직 엄지의 저주는 풀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머리가 아닌 엄지가 앱을 열었다는 것을 인식할 때마다 즉각적으로 화면을 끈다. 아마 내년쯤엔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타이머를 사고 시계부를 쓰기 시작했을 때 내 시간의 속도가 생각보다 너무 더디다고 생각했고, 불필요한 시간낭비를 줄이기 위해 애썼다. 그 후로 했던 어떤 노력보다도 이 SNS 중독을 치료하는 것이 가장 효과가 좋았다.
그 전엔 계획한 하루 일과를 해내기가 벅찼는데 지금은 할 일을 다 하고도 시간이 남아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기도 한다. 하루가 눈에 띄게 길어졌고, 같은 24시간 동안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혹시 당신의 하루가 짧다고 느껴진다면 스마트폰 이용시간을 제한해보는 게 어떨까. 사람마다 중독된 앱은 다르다. 나처럼 SNS 일수도 있고, 누군가는 게임, 누군가는 뉴스 기사에 달린 댓글을 아무 생각 없이 몇 시간이고 읽고 있을 수도 있다.
자신이 가장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앱이 무엇인지 파악했다면 이제 이용시간을 의식적으로 줄여보자. 당신의 하루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길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