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사항이 길게 적힌 피드백이 오면 우리는 일단 스트레스부터 받게 됩니다. 클라이언트에게 작업물을 보내기 전에도 이미 자체적으로 수많은 수정을 거쳐 완성도를 충족시켰기 때문에 마음속에선 이미 릴리즈를 한 상태나 다름없거든요.
그러나 다양한 피드백을 받고 수정을 하는 것은 작품 완성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입니다. 수정 없이 단번에 릴리즈 되는 영상은 매우 드뭅니다.
우리는 클라이언트사 담당 직원과 그의 상사, 대표의 피드백까지 모두 반영해야 하는 지루한 수정 과정을 견뎌야만 합니다. 브랜드와 편집사 사이에 대행사가 끼어있는 경우엔 이 과정이 두배로 길어지기도 하죠. 같은 회사 내에서도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기 때문에 간혹 담당 직원의 피드백으로 수정했던 것을 같은 회사의 대표가 모두 뒤엎어버리는 일도 일어납니다.
매우 비효율적이고 화나는 일이지만 어쩌겠습니까. 작품이 릴리즈가 되고 수만 명의 대중에게 보일 것을 생각하면 그전에 몇 명의 눈을 통해 평가받는 것은 별일 아닙니다.
수정이 독이 되는 이유
하지만 피드백대로 수정을 하는 것이 작품을 언제나 좋은 방향으로 개선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독특한 취향을 가진 클라이언트의 요구로 작품의 퀄리티가 낮아지는 것은 다반사고, 겹겹이 쌓인 컨펌 라인 때문에 작품이 갈기갈기 찢겨 모든 밸런스가 무너지기도 해요.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처럼요. 이런 문제는 대부분 작품의 개선 방향이 잘못 설정되었을 때 일어납니다.
사진 한 장을 수정하는 일이라면 그리 복잡하지 않습니다. 개선 방향이 명확하기 때문이죠. 제품이 어두워 보인다면 밝기를 조절하면 되고, 색감이 맞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습니다. 합성을 하거나 디자인 요소를 추가하는 것도 비교적 손쉽게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1초당 20~30장의 사진이 움직이는 영상이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사진과 영상의 차이는 한 문장의 슬로건과 소설의 차이만큼이나 큽니다. 소설에서 매끄럽지 않은 부분을 수정하는 것이 단어 몇 개를 손보는 정도의 작업이 아니라는 것은 직접 소설을 써보지 않은 분들이라도 쉽게 알 수 있죠.
수정해야 할 부분이 왜 매끄럽지 않은지, 개선 방향이 무엇인지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저 직감으로 '이렇게 한다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라는 구먹구구식의 예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모든 작업 과정을 알고 있는 편집자는 클라이언트보다 좀 더 명확한 청사진을 그려볼 수 있겠죠. 그러나 편집자조차 직접 해보기 전까진 수정 방향을 명확히 못 박을 수 없습니다.
의미 없는 피드백은 없다
영상에서 하나의 씬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앞뒤 장면과의 관계, 영상 전체의 흐름, 촬영 원본의 컨디션, 작업물의 포맷 등 너무 많은 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틀림없이 어울릴 것처럼 보였던 것들이 막상 만들고 보면 어울리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클라이언트에게 왜 그런 방식으로 수정하기 힘든지 설명하기 힘든 때도 많습니다. 영상 컨디션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정확히 설명하기 위해 알아야 하는 영상 포맷, 프레임, 픽셀 등의 개념은 누구나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상식이 아니기 때문이죠. 비전공자라면 모르는 게 당연합니다.
피드백에 적힌 개선 방향은 얼마든지 틀릴 수 있지만, 그 부분을 수정해야 한다는 사실은 틀리지 않습니다. 이유야 어찌 됐든 눈에 걸리는 부분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거든요. 왜 그 부분이 매끄럽지 않은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눈에 걸리는 돌부리를 제거해야 한다는 점은 명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선 방향을 단단히 못 박기보단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작품을 고쳐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다른 장면을 더해야 할 것 같았는데 오히려 몇 장면을 빼는 것이 해결 방법일 수도 있고, 톤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림자를 더 어둡게 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수정 그 자체
우리를 둘러싼 모든 상황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요. 그렇기 때문에 10년 전에는 통했던 방법이 지금은 틀린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지요. 모든 것이 변화하는 동안 변화하지 않고 멈춰있다면 그 상태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5년에 한 번, 가능하다면 1년이나 6개월에 한 번씩 지도를 펴고 우리의 위치를 파악하고 점검해야 합니다. 분명 정확히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동안 길이 바뀌거나 영원히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지구의 자성마저 바뀌어 나침반이 더 이상 맞지 않게 되기도 합니다.
개선 방향은 영상을 수정할 때와 같이 최대한 열어두는 것이 좋겠죠. 우리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은 소설이나 영상을 수정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복잡하니까요.
수정 방향보다 중요한 것은 현재 상태를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수정을 하는 행위 그 자체입니다. 꾸준히 변화를 모색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점점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