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길이 끊겼다.
무언가를 건너기 위해 놓여 있었을 다리는,
지금은 공중에서 맥없이 끊긴 채,
바람 속에 윤곽만 떠다닌다.
그 끝자락에 서 있던 나는,
잡히지 않는 그림자 하나를 붙잡고 있었다.
지금도 어쩌면.
비우는 일은 종종 미화된다.
나는 그것을 하지 않기로 했다.
쓸쓸함조차 밀어낸 자리에,
사람들은 선뜻 이름을 붙이려 했고
나는 고요히 거절했다.
내 머릿속은 느리게 녹아내린다.
기억은 젖은 책처럼 번지고,
감정은 주사기처럼 삽입된 채로
나를 돌게 한다.
행복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으면서도
무언가를 빼앗아가는 방식으로.
내 안은 구멍이 났다.
정확히 말하면, 구멍이 났다기보다
어디선가 뽑혀 나간 감각의 빈자리.
그 속에 남은 피가 응고되지 못한 채 흔들렸다.
거울 앞에 섰다.
어떤 체온도 없는 얼굴,
정지된 표정,
불투명한 창으로 비친 누군가의 껍질.
나는 그 얼굴을 알지 못했다.
바깥의 창문에는
푸르게 번진 수채화 하나가 얼룩져 있었다.
그것은 말이 없었다.
다만 입이 없는 그림에서
눈만이 슬픔을 전하고 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내가 누군가를 다치게 하면서까지
지키고 싶었던 무언가는
결국 나 자신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선택의 무게는
절벽 끝에서 미세하게 흔들리는
한 사람의 중심처럼 아슬아슬했고,
나는 지금
눈동자에 초점이 없는 채로
그 위에 서 있다.
그녀의 파란 향기는
시간을 따라
잿빛으로 희미해졌다.
그 향기는
다신 돌아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