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 책꽂이에 꽂혀 있던 책들이 너도나도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했다. "도대체 며칠 만이야. 저 여자는 왜 맨날 소파에 앉아 글 쓴다고 난리야. 밖에 나가지도 않고. 어휴, 답답해서 혼났네."
책꽂이에 꽂혀 있던 전집들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말하기 시작했다. "야, 말도 마 말도 마. 나도 저 여자가 쓴 글 몇 번 읽는 거 들어 봤는데 내 귀를 막고 싶었다니깐. 재미라도 있으면 또 몰라. 그러면 그나마 들어 줄만 하겠는데 자기가 써 놓고 좋다고 혼자 낄낄 거리는 폼이라니. 정말 못 봐주겠더라고. 글은 뭐니 뭐니 해도 나 정도는 돼야지. 안 그래?" 책꽂이에 꽂혀 있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파우스트'라고 적힌 책이 말했다.
그러자 질세라 만화책들이 일제히 이구동성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재미라면 우리지 우리. 너네들 하루 종일 광내고 때 뺀다고 누구 하나 거들떠볼 것 같아. 우리 봐봐. 여기 책꽂이에 먼지 한 톨 있나. 저 집 애들 있지. 얼마나 우리를 좋아하시는지 학교 갔다 오기 무섭게 빼서 읽는 게 우리라고 우리. 하다못해 자기들 똥뚜간 갈 때도 품 안에 꼭 끌어안고 간다니깐. 암만 우리가 좋다고는 하지만 제발 그건 사양하고 싶어. 저 집 아들은 고기를 너무 좋아해. 그 똥 냄새는 내가 불 꼬챙이에 처박혀 활활 타올라 죽는다고 해도 맡고 싶지 않은 냄새라고. 그럼 빨리 누고 나오기라도 하지. 변기통에 앉아 나를 읽느라 나갈 생각을 안 해요 안 해. 또 생각하니 토 나올 것 같네. 우웩."
점잖게 얌전을 빼며 있던 신간들이 안 되겠는지 한 마디씩 거든다. "흠흠. 참 듣기 거북하네. 좀 교양 있게 말할 수 없니? 나는 이제 막 나온 요즘 좀 나간다는 베스트셀러 신간들이야. 저 집주인 여자는 인터넷 서점에서 나를 사고는 자기는 안 읽고 꼭 애들을 먼저 읽히지. 산 건 분명 저 여자 일 텐데 말이야. 나를 도통 읽을 생각을 안 하지 뭐야. 매일 애들 책가방 속에 나를 한 권씩 넣어 주고는 애들이 학교 갔다 오면 다 읽었는지 확인을 하더라고. 자기나 좀 읽지. 요즘 책값이 좀 비싸. 내 보기엔 가정 형편도 그렇게 여유로워 보이지 않던데 이러다 내가 어디 저 멀리 중고시장에 내다 팔리기라도 하면 난 정말 살고 싶지 않을 것 같아. 차라리 이 집 애들하고 한평생 동고동락하다 가고 말지. 애들이 책을 험하게 보지는 않더라고. 낙서도 하지 않고. 난 그게 제일 마음에 들거든."
"야, 야 야, 다 필요 없고 누구 나보다 이 집에 오래 있었던 책들 있으면 손 좀 한 번 들어봐. 나는 저 아줌마 첫째 아들 뱃속에 있을 때부터 있었던 책이야. 내가 얼마나 좋은 책인 진 몰라도 이사 갈 때도 버리지 않고 나를 꼭 챙겨. 저 집 아줌마 언니 때부터 있었으니 대대손손 나를 물러 읽으려나 봐. 혹시 나를 가보로 삼으려나."
한쪽 모퉁이에 먼지가 뿌옇게 앉은 한눈에도 오래돼 보이는 '주니어 김영사'라고 적힌 '앗 시리즈' 전집이 한 술 거들며 말했다.
왁자지껄 한바탕 떠드니 이 집 주인 여자가 외출하고 돌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띡띡띡 철커덕" 문이 열리자 마트를 갔다 온 모양인지 무겁게 잔뜩 장을 본 가방을 식탁에 '탁' 하고 올려놓고는 그 집 여자는 커피를 한 잔 타 다시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