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아줌마를 밀어 버리자.

수상한 책 들 4

by 글쓰기 하는 토끼


문제집들은 살금살금 아이들 곁으로 다가갔다. 아이들은 엄마 몰래 문제집 속에 핸드폰을 숨겨 놓고 게임을 하고 있었다.

"얘, 얘"
무더기 속 문제집 한 권이 아이의 책상 위에 펼쳐져 있는 수학 기본서 문제집을 불렀다.
"헐, 너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 개쩐다"
수학 기본서는 문제집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문제집이다. 잘못해서 문제집 무더기 안으로 깊숙이 처박혀도 주인 여자는 기필코 찾아내서 아이 책상 위에 갖다 놓곤 했다.
한 학기가 다 끝나가도, 아이들이 이 문제집을 다 풀어도 바로 버리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공부하는 중간중간에 펼쳐 보게 했다. 그래서 수학 기본서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문제집들은 줄을 섰다.

"너 한자 학습지 아니니? 근데 니가 여기까지 무슨 일이야? 그리고 또 저 무더기 속에서는 어떻게 빠져나왔고?"
"주인아줌마가 나를 여기로 갖다 주었어. 오늘 학습지 선생님 오시는 날이거든. 그리고 마지막 날이기도 하고. 이제 안 하신다고 하시더라고. 중학교 올라간다고. 6살 때부터 지금껏 한 번도 안 밀리고 했었잖아. 근데 오늘 보니깐 뒤에 한두 장 정도 안 한 게 남아 있어서. 아줌마가 보시면 '꼼꼼히 안 보고 또 이렇게 했어?' 하시면서 1호를 혼낼게 뻔하니깐. 그래서 말인데 혹시 나를 먼저 풀게 하면 안 되겠니?"
"마지막 날이라고? 그래 그러지 뭐."
하면서 한자 학습지를 끌어올려 주었다.
그러자 수학 기본서 뒤로 풀리기를 기다리고 있던 다른 문제집들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야, 너희들 뭐야? 지금 새치기하는 거야? 뒤에 줄 서 있는 거 안 보여? 빨리 비키지 못해."
"마지막이면 마지막이지 그건 아니지. 나는 2주째 한 번도 풀리지 못하고 있는데 무슨 소리야."

그때 영어 독해 문제집이랑 영어 문법 문제집들이 끼어들며 말했다.
"야, 마지막이라는데 한 번만 봐줘라. 그것도 뒤에 한두 장 밖에 안 남아 자잖아."
"뭐? 영어. 너 니 일 아니라고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니지. 너도 지금 매일 풀리고 있다고 자랑하는 거야?"
"맞아 맞아. 뒤에 며칠씩 기다리고 있는 애들 생각 좀 해 주어야지. 누군 양보 안 하고 싶어서 이래?"
"쉿, 저기 주인아줌마 오신다. 빨리 애들 사수해. 빨리빨리. 이번에 또 걸리면 우린 다 쓰레기통에 버려 버린다고 했어. 자, 빨리빨리 모두 흩어져. 빨리."
"헉, 정말이네. 우리 이럴 때가 아니야 지금. 애들 보호해야 돼."
"그럼 아줌마를 발밑에 걸려 넘어지게 하자."
"그건 안돼. 이 집 애들 이래 봬도 아줌마 엄청 생각해. 아줌마가 다치면 애들이 우릴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럼 어떻게 하자고? 바로 코앞으로 다가오고 계셔."
"일단 흩어지자. 최대한 멀리."
문제집들은 각자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수학 기본서는 최대한 아이의 핸드폰을 가려 주기 위해 온 힘을 다 쏟고 있었다.

"1호야, 좀 치우면서 공부해. 이렇게 문제집들을 사방팔방 펼쳐 놓으면 집중이 되니?"
하면서 아줌마는 몸을 굽혀 문제집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그 틈을 이용해 핸드폰을 제자리에 갖다 놓고 공부에 집중하는 척했다.

"어, 문제집들이 그렇게 되어 있었어요? 공부하느라 몰랐어요."
하며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어머 우리 애기, 공부에 너무 집중하느라 몰랐구나. 쉬엄쉬엄하면서 해. 아이고, 이뻐라."
하더니 다시 소파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문제집들은 일제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keyword
이전 03화문제집들의 반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