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째각째각째각" 푸르름 한 새벽이 왔다. 주인집 여자는 글을 쓰다 피곤한지 소파에 앉은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보기엔 깊이 잠들어 누군가 흔들어 깨우지 않는 이상 도통 일어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거실의 형광등은 아주 밝게 빛나고 있었다. 책들도 졸린지 눈을 비비며 하품을 했다. "아 내가 미쳐. 내 저럴 줄 알았어. 기름도 한 방울 안 나오는 나라에 잘 거면 불이라도 끄고 자지. 저리 훤히 불을 켜고 어쩌라는 거야. 졸려 죽겠구만." "내 말이. 우리를 꺼내서 읽지 않을 거면 잠이라도 좀 푹 자게 하던지. 내일 아침 또 못 일어나 애들 아침밥이나 제대로 차려 주겠어? 어디."
"도대체 무슨 글을 쓴다는 거야? 공모전 나부랭이도 한번 나가지 않으면서 뭘 저렇게 매일 쓰나고?" "나도 잘 모르지만 저 집 애들 하는 얘기 잠깐 들어 보니 블로근가 무시 긴가 하는 거랑 브런치 작가라고 하던데?" "작가? 그럼 그거 유명한 거야?" " 그건 나도 잘 모르겠고, 여하튼 그것 때문에 매일 뭐라도 써서 올리고 있다고 하더라고." "그렇게 바쁘다면서 어떻게 드라마랑 유튜브는 매일 보지? 그거 볼 시간 있으면 글 쓰는데 조금이라도 도움 되게 우리를 좀 꺼내서 읽지. 정말 이해 못 하는 아줌마일세."
"맞아. 맞아. 저번엔 좀 심하더라. 내일 당장 대학원 면접인데 자소서 같은 것도 한번 적어서 외우지 않고 늦게까지 드라마만 보고 있었다니깐." "와 진짜? 대박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아니 우리들을 쓴 작가님들 좀 봐봐. 어디 밥 먹을 시간이라도 있었는지. 공부며 뭐며 죽기 살기로 덤벼들어 써도 모자랄 판에 드라마가 웬 말이니." "그러니깐, 그 아줌마 말로는 구어체 같은 단어 모으기 위해 본다고는 하는데 나는 저 아줌마가 드라마 보면서 메모하는 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그나저나 언제까지 이래야 돼? 벌써 5개월이 넘었다고. 사람이든 물건이든 잠을 자야지 잠을." "저번에 저 아줌마 남편이 와서 하기 얘기 들어 보니깐 이렇게 말하던데? '이번엔 좀 오래가네' 이러더라니깐. 아마 모르긴 몰라도 금방 끝날 것 같지는 않겠어. 우리도 무슨 수를 내든지 해야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살 수가 있어야 말이지."
"여보게들, 나는 백과사전인데 내가 좀 한마디 해도 되겠나?" "어머, 웬일이래. 백과사전이 입을 다 열고.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네. 그래 무슨 말이 하고 싶은 신데요?" "나는 아주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전이라 밤에 쉬지를 못하면 낮에 지식을 잘 전달할 수가 없어. 그러니 제발 부탁이니 잠 좀 자게 입들 좀 다물어 주시게. 어디 시끄러워서. 내 원 참." "이 집 애들 생전 사전 꺼내 보는 거 한 번도 본 적이 없구만. 뭐래." 여기저기서 책들이 한 마디씩 볼멘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금세 책꽂이에 꽂힌 책들은 시장통 마냥 큰소리를 내지르며 소리를 질러 댔다.
'띡띡띡, 철커덕' 현관문이 열렸다. 이 집 남편이 퇴근을 하였다. 일제히 책들은 언제 그랬나는 듯 조용해졌다. 남편은 거실의 불을 꺼주고 이불도 가져와 아내에게 덮어 주었다. 그리곤 방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째각째각째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