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등 문제집

수상한 책 들 6

by 글쓰기 하는 토끼


"야, 너희들 정말 치사하다. 어차피 너희들도 안 읽히면 쓰레기통 신세인 건 우리랑 같은 거 아니야? 이 집에 와서 한 번도 안 읽힌 책 너네는 없어? 우리는 그래도 첫 장은 푼다고."

그때 '딩동 딩동' 하는 소리가 들렸다. 문제집들과 책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학원에 갔다 왔는지 2호가 꽤 무거워 보이는 택배 상자를 낑낑거리며 들고 들어왔다.
"뭐길래 왜 이렇게 무겁지?"
하더니 상자를 북 하고 찢었다.
"어? 문제집이네. 중학영어, 중학 수학, 비문학 독해, 문학 독해, 그리고 이건 '라틴어 수업', '채사장의 지대넓얕 1~5권 세트'네. 와 재밌겠다."
"2호 왔니. 수영 가야지?"
하더니 주인아줌마는 2호를 데리고 다시 나갔다.

"뭐야, 또 책을 산 거야? 우리를 아직 다 읽지도 않았는데?"
"저 집 애들 아직 저렇게 문제집이 많은데 또 사들인 거야? 언제 다 풀려? 공부하는 거 별로 좋아하지도 않던데."
"놓을 자리 나 있나 모르겠네. 저기 쟤네들 자기 자리 없어서 저렇게 떠돌아다니는데 저런 건 안 보이나."
"가만 보니 저 집 첫째 아들 이번에 중학교 들어간다고 산 모양이네."

문제집들은 새로운 문제집이 반갑기도 하고 또 견제하기도 하며 조심히 살펴보았다. 새로운 문제집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빳빳이 쳐들었다.
마치 이곳이 제 집인 양 그 기세가 실로 대단했다.

"흠흠, 야 새로 온 문제집. 너네 소개 좀 해 봐라."
책 중 호기심 많은 과학 책이 참지 못하고 물어보았다.
새로 온 문제집은 책들을 죽 훑어보다가 그 앞으로 대뜸 나가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중등 수학 쎈이라고 해. 그리고 얘네들은 중등 수능특강 문제집들이고."
소개를 마치자 증등문제집들이 여전히 고개를 높이 쳐들고 일렬로 죽 늘어섰다. 그 기세에 책들은 조금 움츠려 들었지만 아닌척하며 자리를 내줄 생각은 눈꼽만치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굳히기 들어갔다.

"하하하, 제네 좀 봐."
중등 문제집들이 가소롭다는 듯 웃어 재꼈다.
"너네들 제네들한테 이런 대접받으면서 여태 있었던 거야? 안 되겠네. 우리가 본때를 보여줘야지. 너네들 우리만 믿어. 우리 만난 거 아주 운 좋은 줄 알아."

'딩딩딩 철커덕'
수영을 간다던 아이들과 주인아줌마가 돌아왔다.
"어, 문제집 왔네."
하더니 중등 문제집부터 집어 들고는 자리에 앉았다.

책들과 문제집들은 다시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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