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핸드폰

수상한 책 들 7

by 글쓰기 하는 토끼


어스름하게 어둠이 깔리고 하나 둘 가정집 불빛들도 희미해지며 꺼져갔다. 부르릉 거리는 차소리도 점점 잦아들고 크억 하고 누군가 하는 헛기침 소리는 고요한 밤일 수록 더 크게 들렸다. 컹컹컹 하고 누구네 집 개가 짖었다.
'저 집 개는 왜 밤에 잠도 안 자고 저렇게 짖어 되지? 주인은 대체 뭘 하길래 이 조용한 오밤중에도 짖게 놔두는 거냐고.'
책들은 환하게 커진 거실에서 졸린 눈을 비비며 소곤거렸다. 주인아줌마는 역시나 거실 불을 켜 두고 채점을 하려고 쌓아 놓은 문제집들 사이로 다리 한 짝을 쑥 밀어 넣고는 잠이 들었다. 문제집들은 이제나저제나 채점되기를 오매불망 기다리다 지쳤는지 아예 포기하고 잠을 잤다.

"요즘 아줌마 책 좀 읽는 것 같지 않아?"
"응, 그렇더라고. 글쓰기 하더니 우리를 좀 읽어야겠는지 벌써 5권이나 읽었던데? 일주일에 못해도 두 권씩은 완독 하나 봐."
"꽤 열심히 읽네. 재밌나 봐. 하긴 우리가 처음에나 읽기 싫지. 읽기 시작하면 빠져들게 하는 매력은 있지."
"아줌마가 글 쓰는 것보다 책 읽는 게 더 좋지 않아? 집 안이 조용하잖아. 글 쓸 땐 애들이 떠들거나 중창단인 2호가 노래라도 부를 라 치면 그렇게 돼지 멱따는 소리로 조용히 하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통에 나 귀청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 아흐 내 귀."
"그것도 그런데 저 집 딸 말이야. 중창단 한다고 허구한 날 노래를 불러 재껴서 우리가 그때 얼마나 고생했냐고."
"맞아 맞아. 목욕하면서까지 노래를 불러서 접때는 보니깐 목이 다 쉬어서 나오더라니깐."
"나는 그 노래 전부 다 외워. 하도 많이 들어서. 한번 볼래? '~곤히 잠이 드신 엄마의 곁으로~ ' 봐. 다 외우잖아."
"그때 아줌마가 2호한테 '노래 좀 그만 불러.' 하면서 '한 번만 더 부르면 그 입 확 찢어 버린다'라고 해서 나 완전 식겁했었잖아. 내 입 찢어지는 줄 알고."
"아줌마 정말 무식하다. 딸한테 어떻게 그런 말을 하지."
"글 쓸 땐 아줌마가 좀 예민하기는 해."
"아줌마가 소리를 지르는 일은 또 하나 더 있어."
"애들 공부하라고 하는 거?"
"아니 그거 말고, 1호가 화장실 갔을 때 아줌마 몰래 품 안에 핸드폰 숨기고 가서 걸렸을 때 나 정말 무서웠잖아."
"아, 그때? 나도 무섭긴 무섭더라. 우리 그때 다 벌벌 떨긴 했었지."
"그리고 1호는 똥뚜간에 있으면서 가끔씩 문을 살짝 열어 나. 그러면 아줌마는 냄새난다고 막 뭐라고 해. 문 계속 열어 놓으면 바깥에 못 나오게 문 걸어 잠근다고 하면서. 그러면 1호는 재빨리 문을 닫아. 본인도 그 냄새나는 데서 오래 있고 싶지는 않겠지."
"1호 똥 냄새 대단하기는 해."

그러자 구석에 찌그러져 있던 핸드폰이 작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애들아, 나는 1호가 나를 매일 몰래 바지 속에 숨겨 화장실에 가서 보곤 했어. 그럴 땐 난 매일 같이 이렇게 기도해. '핸드폰이 방전되게 해 주세요.'라고. 하지만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어. 나는 그 냄새나는 똥뚜간에 내가 살아 있는 한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아."

책들은 핸드폰을 싫어해서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저 핸드폰이 이 세상에 나온 날부터 사람들이 책을 멀리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핸드폰만 애지중지하는 꼴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홀로 있던 핸드폰은 많이 외로워했지만 어느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하지만 핸드폰의 그 말에 모두들 그 심정 알겠다는 듯 무언의 동조를 해 주었다.

"부스럭부스럭"
아줌마가 뒤척이며 일어났다. 책들은 모두 조용해졌다.



keyword
이전 06화중등 문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