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만 기다리면 돼.

수상한 책 들 9

by 글쓰기 하는 토끼


"애들아, 얘들아, 모여봐. 너네 문제집들도 같이. 우리 이러다 굶어 죽겠어. 유튜브 영상이랑, 영화, 드라마 같은 영상들 때문에 사람들이 더 이상 우릴 찾지 않을지도 몰라."
"헉, 정말? 그럼 어쩌지."
"야, 책들 우리 문제집은 빼주지. 우리가 안 팔릴 일이 없잖아. 천지가 개벽하지 않는 한."
"그렇다고 얄밉게 빠지겠다. 너네 벌써 잊었어? 며칠 전까지 책꽂이 한 칸 차지 못하고 굴러다녔던 거. 기억 안 나?
"아니 뭐. 알았어. 알았다고."

"작가들이 글을 좀 어렵게 써야지. 어려운 지식을 쉽게 쉽게 쓰면 얼마나 좋겠어. 드라마나 영화처럼 재미있게 말이지."
"그런데 있잖아. 그렇게 쓰면 상 안 줘. 정말 어렵게 어렵게 사전 찾아가며 볼 수 있는 책을 써야 상을 주거든. 그래서 작가들이 즙을 짜내듯 힘들게 글을 쓰는 거야."
"그렇구나. 하지만 상을 받으면 뭐 해. 사람들이 읽어 주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 일 텐데."
"그래서 저 아줌마가 책을 안 읽는 건가. 재미없어서."

"사람들이 보통 책을 열심히 보는 이유가 다 먹고살기 위해 보는 거잖아. 그 어려운 법 공부도 의학 공부도 다 해내니 말이야."
"영상이 이렇게 발달하기 전에는 사람들 손마다 책 한 권씩은 기본으로 있었어. 그런데 이젠 핸드폰만 들고 다녀. 책은 무겁다나 어쩐다나 하면서."
"전자책도 있고 요즘은 오디오북이라는 것도 있지만 영상만큼 많이 보진 않는 것 같아."

"그나저나 저 집 애들도 영상이랑 게임에 환장하던데. 큰일이네."
"왜 아니래. 나 저번에 커피숍에서 저 아줌마 친구가 하는 얘기 듣고 얼마나 식겁했는 줄 몰라."
"뭔데. 뭔데."
"저 아줌마 친구 아들이 고등학생인데 글쎄 샤워하면서도 유튜브를 본다잖아.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못한대. 학원이고 뭐고 공부는 아예 때려 쳤대.
그래서 졸업이라도 제때 해라 그런다잖아. 졸업해도 문제지. 졸업하고 뭐 해 먹고살아. 쯪쯧."

"나중에라도 철이 들어야 할 텐데. 저 아줌마도 애들 핸드폰 관리는 철두철미하게 하더라고. 그래도 또 애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영상 보고 게임하고. 아줌마가 날면 뭐 하냐고. 애들은 로켓인데."
"엘리베이터에서 초딩이고 중딩이고 고딩이고 핸드폰 안 보는 애들이 없어. 아예 코를 박고 고개를 들지 않아. 걸어가면서도 보니깐. 사고 안 나는 게 다행일 정도야."

"그래서 말인데 저 아줌마한테라도 얘기해 보자. 제발 영상보다 재밌는 글 써달라고."
"그럴 필요 없어. 영상보다 재밌는 책 세상에 널리고 널렸어. 영상에 이미 익숙해진 사람들이 읽지 않을 뿐이지.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확실히 예전하고 달라지긴 달라졌어."
"그럼 이젠 우리 어떻게 되는 거야?"

그러자 한쪽에 지그시 눈을 감고 있던 고전문학들이 얘기하기 시작했다.
"아그들아, 우리들 좀 봐줄래? 우린 100년 전에 이미 쓰여졌어. 우리가 없어졌니?
정말 별 걱정을 다하네. 듣다 듣다 내 하도 기가 막혀 한마디 할게.
우리는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도 꾸준히 실리고, 하다못해 문제집 지문에도 실려. 엄마들은 아이들한테 우리를 못 읽혀 안달을 하고 말이야.
필독서라면서 논술학원에 보내면서까지 우리를 어쩌지 못해 난리지.
그러니 이제 너희들도 그런 걱정은 그만하고 잠 좀 자자. 잠 좀. 요즘 종일 하도 떠들어 대니, 피곤해서 살겠니? 우리처럼 100년만 기다리면 된다."

그제야 책들은 안심을 하였다. 100년이 되려면 아직 한참 멀었으니 그 까마득한 시간 동안 뭘 하며 보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하는 듯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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