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댓바람부터.

수상한 책 들 8

by 글쓰기 하는 토끼


'부스럭' '부스럭'
마침 아줌마가 일어나 앉았다. 피곤한지 연신 하품을 해댔다.
그리곤 책상 위에 수북이 쌓여 있는 문제집들 중 한 권을 끄집어내어 채점을 하기 시작했다.
문제집들은 자다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서로 어리둥절해했다.
채점을 하던 아줌마는 별안간 한숨을 '푸욱'하고 쉬기도 하고 무언가 중얼중얼 욕 비슷한 소리도 냈다.

그 모양새를 보고 있던 책들은 단박에 왜 그런지 알 것 같았다. 어디 한두 번 봤어야 말이지.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도 읊는다'는데 문제집 채점하는 아줌마 한숨 소리만 들어도 이제 척하면 척이다.
이 집 애들이 아는 걸 실수로 틀렸을 때, 글씨를 못 알아보게 써 놓았을 때, 모른 척 풀지 않고 넘어간 문제들이 있을 때, 아줌마는 그렇게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채점을 하다 안 되겠는지 아줌마는 다시 문제집들을 한쪽으로 밀어 넣고 불을 꺼버렸다.
그리고 열이 바짝 오른 채로 다시 잠이 들었다.

"요즘 좀 조용하다 싶었는데 아침 되면 천장이 또 요동치겠군."
"어디 천장만 요동칠까. 저 문제집들도 무사하지 못할 것 같은데."
"왜 아니야. 근데 저 아줌마는 엄마표 공부한다고 그렇게 떠들어 대더니 왜 애를 잡고 난리야. 자기 자식 끼고 앉혀 놓고 밤낮 조야로 가르쳐도 될 똥 말똥 할 텐데. 그리고 애들 공부 봐주려면 먼저 본인이 공부를 좀 하는 게 순서지. 애들 백날 잡고 삐까번쩍한 문제집 암만 사다 날라봐. 될 것 같은가. 이런 건 안 가르쳐 줘도 삼척동자도 알겠네."
책들은 소곤소곤 대다 졸린지 모두들 조용해지며 잠이 들었다. 까만 밤이 더 까매지며 어둠은 저 멀리 지평선 끝자락까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일어나세요, 일어나세요, 8시예요'
자명종 시계가 그 우렁찬 목소리를 뽐내며 목청껏 외쳐 댔다.
하지만 아줌마는 용케 눈도 뜨지 않고 자명종을 찾아 손으로 눌러 버리고 다시 잠이 들었다.

한 30분이 흘렸을까. 이 집 딸이 맨 먼저 일어나 엄마 품속으로 속 들어가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꼼지락꼼지락 하더니
"엄마 배고파요"
그 소리에 아줌마가 주섬주섬 일어나 주방으로 간다. 간단히 아침을 차려 주고 1호를 깨운다.
"밥 먹게 일어나. 이불 개고 커튼도 치고 나오고."
1호는 더 자고 싶은 걸 못 잤다는 듯 한껏 얼굴을 찡그렸다.

"빨리 먹고 엄마랑 공부하자."

아줌마는 아이들에게 밥을 빨리 먹으라며 계속 재촉했다. 마지막 밥 한 숟가락이 입안으로 들어가자마자 1호를 책상에 앉혀다. EBS 수학 영상을 찾아 틀더니 아이에게 보라고 시켰다.
1호는 아침 댓바람부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싶었다. 노트북에는 중학교 개념 영상이 틀어져 있었다.
아줌마는 1호 맞은편에 마주 보고 앉아 1호가 영상을 잘 보는지 눈을 부릅뜨며 쳐다보았다.

그러자 1호는 아줌마 눈치를 살살 살피며 영상을 집중 있게 보는 척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영상이 모두 끝나자 1호에게 문제집을 풀라고 시키고 틀린 문제를 그 자리에서 바로 봐주었다.
세 시간을 그렇게 공부했다. 아줌마나 1호나 화를 내거나 큰소리 내는 법은 없었고 각자 제 할 일에 충실했다.

그 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보고 있던 이 집 딸이 '쪼르르르' 하고 엄마 곁으로 왔다.
자기도 모르는 문제가 있으니 엄마하고 같이 공부 하고 싶다고 말했다.
"오빠 먼저 봐주고 너 봐줄게. 영어 원서 읽고 있어."
"칫, 맨날 그러면서 오빠만 봐주면서. 나는 언제 봐주냐고. 나 엄마하고 할래." 하면서 서러웠는지 울기 시작했다. 아줌마는 난감해했다. 그래도 중학교 아들 녀석이 급했던지 일단 딸을 달래 놓고 다시 아들과 씨름을 했다.

책들은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아줌마 정신 차렸나 보다."
"언제까지 갈까. 설마 오늘 하루 저러고 마는 건 아니겠지. 우리도 좀 읽어야 지금 쓰고 있는 글들 좀 나아질 텐데. '더 글로리' 드라마 이제 그만 보고 우리들 좀 읽어주고 서평도 쓰고."
하고는 더는 아무 말도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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