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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는 피그(pig), 돼지고기는 포크(pork)?

영어는 게르만 계통인데 프랑스, 라틴 어휘가 많은 이유

의학용어를 공부하다 보면, 기본은 영어인데 수많은 언어, 특히 라틴어, 그리스어, 프랑스어 등이 섞여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실 의학용어뿐 아니라 영어 자체가 수많은 언어의 복합체입니다. 영어의 뿌리를 따라 올라가 보면 조금 의외의 사실을 만나게 됩니다. 영어는 기본적으로 게르만 계통의 언어입니다. 그렇다면 왜 프랑스어나 라틴어에서 온 단어들이 그렇게 많은 걸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수세기 동안 이어진 전쟁과 정복, 그리고 계급과 문화의 뒤얽힌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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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게르만

먼저 영어라는 말 자체는 Anglish, 곧 앵글로색슨의 언어라는 뜻에서 왔습니다. 앵글로색슨은 사실 앵글족과 색슨족, 두 게르만 부족을 함께 부르는 이름입니다. 이들은 5세기 무렵,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한창이던 시기에 현재의 독일 북부와 덴마크 지역에서 바다를 건너 영국으로 이주해 왔습니다.

당시 브리튼 섬은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 있었고, 그곳에는 켈트족과 일부 로마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켈트어와 라틴어를 사용하며 살아가고 있었지요.

4세기 말, 한때 유럽을 지배했던 로마 제국은 내부의 부패와 외부 침입으로 인해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여파는 멀리 떨어진 브리튼 섬에도 닿았습니다. 약 410년경, 로마는 더 이상 브리튼을 방어할 여력이 없었고, 결국 군대를 철수하게 됩니다. 이로써 브리튼 섬은 로마의 보호 없이 외부의 위협에 무방비로 노출되었지요.

브리튼을 노린 외부의 적은 주로 북쪽의 픽트족, 그리고 서쪽 바다 건너 아일랜드의 스코트족이었습니다. 그들은 로마가 떠난 틈을 타 섬 곳곳을 약탈하고 공격하기 시작했고, 브리튼인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브리튼의 몇몇 지방 군주들은 고심 끝에 게르만족 용병을 불러들입니다. 바로 이때 등장하는 이들이 앵글족, 색슨족, 주트족이었지요.

이들의 등장은 처음에는 구세주와도 같았습니다. 앙글로색슨족은 용병으로서 브리튼을 위협하는 야만족들과 싸워주었고, 실제로 많은 전과를 올렸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예상치 못한 배신이 벌어집니다. 브리튼을 지키는 데에서 정복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꾸게 됩니다. 본래는 ‘돕기 위해’ 들어온 이들이, 오히려 칼끝을 돌려 브리튼을 침략하게 된 것입니다. 앙글로색슨족은 점차 더 많은 부족을 불러들이며 대규모로 이주를 시작했고, 브리튼 각지에서 켈트계 주민들을 몰아내거나 동화시키며 자신들의 왕국을 세워나갑니다. 브리튼의 중남부 대부분은 점차 앙글로색슨의 손에 넘어가게 됩니다. 반면, 원래의 브리튼인들은 산악 지대로 밀려나 웨일스와 콘월 같은 곳으로 피신하게 되었지요.


2차 프랑스, 라틴어

이렇게 자리 잡은 영어는 한동안 비교적 순수한 게르만어로 유지되고 있었는데요, 이 흐름을 바꿔놓은 큰 사건이 바로 1066년의 노르만 정복입니다. 프랑스 북부의 노르망디 공작이었던 윌리엄이 잉글랜드를 침략해 왕위에 오르면서, 로만-프랑스어 계통의 노르만어가 지배층의 언어가 되었던 겁니다.

그때부터 귀족과 법률가, 성직자, 왕실 사람들은 프랑스어와 라틴어를 썼고, 일반 백성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언어인 고대 영어를 썼습니다. 이렇게 언어가 계층을 따라 갈라지게 되면서, 같은 사물이나 개념을 표현하는 단어도 계층에 따라 달라지는 일이 생겨났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가축을 돌보는 농민들은 소를 ‘cow’, 돼지를 ‘pig’라 불렀습니다. 반면 그 고기를 식탁에서 접하는 귀족들은 ‘beef’, ‘pork’처럼 프랑스어에서 온 단어를 썼지요. 이처럼 하나의 사물을 두고 서로 다른 단어를 쓰게 된 건, 바로 그 사물과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었는가에 따라 달랐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단어들을 표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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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단어 하나하나에도 당시의 사회 구조와 언어의 힘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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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다시 영어로

그런데 이렇게 프랑스어가 주도하던 시기에 또 다른 전환점이 찾아옵니다. 바로 14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백년전쟁입니다. 잉글랜드와 프랑스 사이에 벌어진 이 전쟁은 단순한 영토 다툼을 넘어서 민족 정체성의 문제로까지 번졌습니다. 프랑스와 전쟁 중인데 귀족들은 여전히 프랑스어를 쓰고 있다는 점이 점점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겁니다. 그러면서 영어가 다시금 공적인 자리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1362년에는 법정에서 영어 사용이 허용되었고, 교육과 행정에서도 영어가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시기에 제프리 초서가 영어로 쓴 캔터베리 이야기가 큰 인기를 끌며 영어 문학의 위상을 높였고, 존 위클리프는 성경을 영어로 번역해 종교 영역에서도 영어가 살아 숨 쉬게 했습니다.


이렇게 영어는 프랑스어와 라틴어의 그늘 아래에서 오랜 시간 눌려 있었지만, 다시 민족의 언어로 돌아오게 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프랑스어와 라틴어 단어들을 흡수하게 되었고, 그 흔적은 지금까지도 영어 어휘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결국 오늘날의 영어는 게르만어의 뼈대를 바탕으로 라틴어와 프랑스어의 살과 옷을 두른, 말 그대로 혼합의 언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영어의 단어 하나하나에는 수백 년에 걸친 정복과 지배, 저항과 자존의 이야기가 스며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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