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id : 실존적 공허함
저의 평생의 업적은 공허를 피해온 것이었습니다. 참 아이러니하죠? 바로 그 아무것도 아닌 것, 즉 공허(void)를 피하다니(avoid) 말입니다. (영어 단어 avoid는 'a-[떨어져]'와 'void[공허]'가 합쳐진 말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을 피한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않습니다. 날아오는 야구공을 피할 수는 있어도, 아무것도 없는 것을 피하다니 말입니다. 아이러니합니다. 그러나, 제 인생은 늘 공허함을 피하려고 온갖 잡다구리한 것으로 채웠습니다. 가끔은 꼭 필요한 것들로 말입니다. 그러니, 제 평생의 성취와 업적은 모두 공허를 피한 것이죠. 지금 이 블로그의 빈공간도 참을 수 없어, 이렇게 글자로 채워나가고 있읍니다. 현대인들은 그 빈공간을 견디는 능력이 완전히 결여(devoid)되어 있습니다. (devoid 역시 'de-[완전히]'와 'void[빈]'의 합성어입니다). 군중속에서 외로움과 따돌림(social void)를 피하기 위해, 끊이 없이 인스타그램 피드를 확인하고, 계약서가 무효화((null and void)되지 않기 위해 전화를 하고, 이메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인생이 공허(void)해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바둥거리고 있는 셈입니다.
의학적 공허 (The Medical Void)
의료현장에서 공허(void)는 매우 특별하게 사용됩니다. 당신이 미국 병원에 간다면 아마도 간호사가 이런 질문을 할거에요.
“Have you been able to void normally?”
뭐라고? 내가 공허함(voidance)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았지? 그리고, 내가 공허함을 못견디고 회피(avoidance)하려는 걸 어떻게 알았지? 그게 내 스트레스의 원인인가? 라고 움찔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기서 void는 방광을 비우다는 뜻입니다. 즉 소변을 잘 보느냐는 질문이에요. 그래서, 소변에 문제가 생기면 배뇨 장애(voiding dysfunction)라고 합니다. 아주 오래전엔 bowl(장), 즉 대변을 비우다는 뜻으로 쓰였는데, 현대에는 단지 소변만을 위해 사용됩니다.
배뇨 장애(voiding dysfunction)가 의심된다면, 간호사는 배뇨 일지(voiding diary)란 것을 줄지도 모릅니다. 언제 비워냈는지(voided), 얼마나 비워냈는지, 그리고 아마도 그 공허(비워냄, voidance)에 대해 어떻게 느꼈는지를 기록하는 작은 수첩이죠. 배뇨일지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적합니다.
Day 1 Entry: “10:00 AM — Successfully voided. 250mL.”
250ml면 정상적이네요. ^^ 축하합니다. 의학에서 중요한 개념중에 잔뇨량(post-void residual, PVR)이 있습니다. 배뇨(voiding) 후 방광에 남아있는 소변의 양이죠. 저처럼 공허함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완전한 비우기가 안되어 잔료가 남게 되지요. 의료 기록에는 이렇게 기록됩니다.
“Pt voided 300mL at 14:00. Post-void residual: 45mL.
“환자, 14:00에 300mL 배뇨함(voided). 잔뇨량(Post-void residual): 45mL. " Pt는 patient, 즉 환자를 뜻하는 약자입니다.
우리는 그저 공허(the void)를 채우려 애쓰는 존재일 뿐입니다. 내 방은 잔뇨(Post-void residual: PVR) 처럼 비워내지 못한 잡동사니들로 가득합니다. 여행이라도 할라치면, 장시간 비행중 내 스마트폰의 배터리가 없을까봐 집요하게 보조 배터리를 준비합니다. 저는 쓰레기를 버릴 때마다 귀중한 것이 그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강박적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언제 부터 공허함은 우리에게 이렇게 큰 두려움이 된 걸까요? 어쩌면, 아주 어쩌면, 그 공허는 채울 필요가 없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있는 그대로 완벽한 것일지도요. 어쩌면 텅 비고, 고요하게. 마치 대소변 처럼 완전히 비워낼 필요가 있는 것들일지도 모르지요. 의학적으로 말입니다. 우리 인생은 공허(void)하게 마련이고 이는 피할 수 없습니다(unavoidabl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