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됐어요
살면서 "아, 됐어요"라는 말을 이렇게 많이 들어 볼 기회가 있을까.
회사에서 한강에서 회를 픽업해 먹는 서비스 사업을 론칭했다. 보통 한강에선 치킨이나 피자를 많이 먹기에, '회'는 다소 생소할 수밖에 없고, 경험을 위해선 직접적인 홍보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그 날이냐고... 전 날 과음을 하여 꾀죄죄한 몰골로 있는 나에게 긴급 인력 지원요청이 온 것이다. 그렇게 나는 팀원들과 점심메뉴를 고르다가 한강으로 끌려갔다.
내가 한강을 한창 가던 13-14년도만 해도 한강공원 입성을 위해선 열댓장의 전단지는 기본으로 받아야 했다. 무분별하게 뿌려대는 '한강 전단지'는 방문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리고 10년 후, 나는 그곳에서 전단지를 돌리게 되었다. 그것도 문전성시를 이루는 금요일 늦은 오후 한강공원 한복판에서. 한강이든, 퇴근길 지하철 역 앞이든 무심코 지나쳤던, 심지어 예민한 날엔 무례하게 들이미는 손길들이 미워 미간을 찌푸렸던 내가 반대의 입장이 되어 있다는 사실이 여러 생각을 들게했다.
먹고살기 쉽지 않군
아무리 극외향인이라도 '낯'이라는게 있다. 서비스 소개를 위해 공원 내 자리에 직접 찾아다니며 일일이 사업 서비스를 소개하고, 추첨 이벤트 응모권 100장을 나눠줬다. 이것은 웬만큼 해탈하지 않고서는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었다. 뭐 하나 쉬운 일이 없는 게 인생이다.
한강을 가는 이유.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쉬기 위해서이다. 나이가 몇 살이든,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든 자신의 소중한 1분 1초를 모르는 사람에게 내어준다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유튜브 광고도 돈내고 보지 않는 시대에, 부담스러운 인사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훼방하는 파란색의 이방인들을 따뜻하게 맞아준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ㅎㅎ
전단지를 나눠주는 것에도 스킬이 있다. 영혼없는 인사 그리고 문장과 문장 사이의 어설픈 침묵은 듣는 이들에게 오히려 반감을 일으킨다. 목소리 톤을 최대한 높이고, 거부감을 느낄 새도 없이 빠른 속도로 말해야 한다. 호흡의 틈은 최소화로 하되, 너무 빨라도 안되고 적당한 숨을 섞어가되 최소한의 시간 내에 정확한 딕션으로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 됐어요'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우리는 단순히 서비스 홍보만 하는게 아니라 너네한테 물티슈도 줄거고, 무료 회 당첨 응모권도 줄거야'라는 메세지를 최대한 함축시켜서 내뱉어야 한다. 여기서 청자의 호응도 함께 유도하면 베스트. 문제는 이 모든 요령을 응모권을 거의 다 나눠주고 나서 깨닫게 된 것이다,,허허
일할 때 놀고싶은 건 국룰이다. 카페 일을 하다보면 시원한 아메리카노와 와플을 시켜놓고 친구들과 편하게 앉아 수다나 떨고싶고, 물건을 팔다보면 나도 편하게 쇼핑이나 다니면서 돈이나 펑펑 써버리고싶다. 하루종일 뙤약볕에 회배달 홍보를 하며 한강을 거닐다보니, 바람 잘 부는 나무 밑에 돗자리나 피고 앉아 회에 소주를 먹으며 여유를 즐기고 싶어졌다.
그럴려면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