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계치를 넘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홀로 산책하며 커피도 마시고 햇볕도 쬐었건만, 집 나간 나의 정신은 쉬이 제자리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머리도 아프고, 설상가상 배도 아프고. 몸과 마음 둘 다 타격이 크다 보니 맨 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그렇게 침대에서 베개를 끌어안고 울다 지쳐 잠이 들었는데, 남편이 부르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밥 먹자."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커피 한 잔만 마셨구나. 새삼 맘고생이 가장 큰 다이어트라는 말이 실감 났다. 그렇게 거실로 나가니, 처음 보는 따끈한 죽이 식탁에 놓여 있었다.
"크림치즈죽이래. 자기, 치즈 좋아하잖아."
남편이 밥도 거르고 끙끙대며 누워있는 나를 위해 죽을 시켜둔 것이다. 아니 그런데 크림치즈죽? 물론 내가 치즈를 사랑하긴 하지만, 치즈와 죽의 조합은 쉬이 상상되지 않는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티스푼으로 맛을 보는데... 우와, 대박!
"어? 맛있어!"
크림수프 같은데 식감은 분명 죽이고, 잘게 다진 닭고기가 들어가 삼계탕 느낌도 났다. 초딩 입맛인 내 취향을 부드럽게 저격한 크림치즈죽! 나는 왜 이런 음식을 30년이 넘도록 모르고 살았던가.
사람은 참 단순하다. 아니, 내가 단순한 걸지도. 방금까지 눈물을 펑펑 쏟고 잠들었는데, 고소하고 따뜻한 죽 한 그릇에 기운이 난다. 왜인지, 꿀렁대며 아팠던 뱃속도 진정이 된 것 같다.
어쩌면 위로는 이런 사소한 일상에서 찾아오는 건지도 모르겠다. 펑펑 오열하며 울다가도, 음식하나에 바보처럼 헤헤거리고, 유튜브를 보며 즐거움을 찾는 것. 그게 위로가 아닐까.
남편의 센스로 맛본 크림치즈죽은 맛있었고, 그 죽을 먹는 동안에는 슬픔을 느끼지 않았다. 그럼 되었지, 덕분에 오늘이 마냥 최악은 아니게 되었다.
재료도 간단한 듯 하니, 한 손으로도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크림치즈죽의 레시피를 검색해 보며, 또 이 죽을 만들 '언젠가'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