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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뀨냥 Mar 03. 2024

아이는 아이다워도 괜찮다.

배가 아픈 게 아니라, 마음이 아팠던 거야.

  이번에는 보건실 선생님의 자문이다.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1학년 여학생이 있는데, 매일 배가 아프다며 울면서 연신 "엄마"만 찾는다고 한다. 이 아이의 엄마는 워킹맘으로, 아이가 전화를 걸면 달래주고 "엄마 오늘 일찍 갈게. 우리 딸 착하지? 잘할 수 있지?"라고 토닥이지만, 오히려 아이의 서러움은 배가 될 뿐이다.


  "엄마 지금 여기로 와."

  "엄마 나 배 아프단 말이야."

  "엄마 미워!"


  그냥 우는 것도 아닌, 소리를 꽥 지르며 발을 구르는 아이의 모습에 보건선생님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고 하신다.


  "진짜 배가 아픈 건 아니거든요. 심리적인 게 더 큰 거 같아서 선생님께 부탁드리려고요. 아이 어머님도 동의하셨어요."


  이렇게, 떼쟁이 1학년 여학생과의 상담이 시작되었다.


  처음 아이의 모습은 매우 밝고 에너지가 넘쳤다. 자기주장도 강하고, 씩씩해 보이는 모습에 아이의 어떤 부분이 엄마와의 불안정한 애착을 만들었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해 보였다. 그렇게 아이와 조금씩 신뢰관계를 쌓던 중, 아이가 순간적으로 나를 선생님이 아닌 "엄마!"라고 불렀다.


  "앗. 아니 선생님!"


  아이는 본인도 놀란 듯 호칭을 수정했고, 나는 조심스럽게 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엄마를 정말 좋아하나 보네."

  "네! 우리 엄마는요,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착하고, 멋지고, 요리도 잘하고요. 저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요."

  "우와. 진짜 멋진 엄마구나. 좋겠다!"

  "그런데요..."


  아이가 망설이다가 어렵게 말을 꺼낸다.


  "엄마가 이제 저는 초등학생이니까. 혼자서도 잘해야 한대요. 동생은 아직 6살인데 엄마가 다 챙겨 주거든요. 근데 저는 이제 스스로 잘해야 엄마가 기뻐하는 거라고 그랬어요."

  

 아. 그런 거구나. 아이의 마음을 100퍼센트 다 이해하긴 어려워도, 왜 이 아이가 유독 학교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못 견뎌했는지, 엄마를 찾아댔는지 알 것 같았다. 초등학생이 되면 '엄마 없이도' 스스로 잘해야 한다는 말이 아이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왔고, 아직 어리고 부모에게 챙김을 받는 동생이 부러웠던 것이다.


  결국, 아이의 떼와 울음도 일종의 사랑받고자 하는 또 다른 몸부림이다.


  "그럼 다시 유치원으로 갈 수 있다면 가고 싶니?"

  아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젓는다.

  "아니요. 저 초등학교 와서 친구도 많이 사귀고, 담임선생님도 좋아요. 돌봄 교실도 재미있어요."


  역시, 첫인상처럼 씩씩하고 의젓한 아이다. 발을 구르며 떼쓰는 모습 뒤에 드디어 아이의 본모습과 마주한 느낌이다.


  "동생이 있다고 했지? 동생도 곧 초등학생이 될 텐데 많이 무섭겠다. 그때 네가 이미 씩씩하게 학교에 다니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면 용기가 나지 않을까?"

  "맞아요. 걘 울보거든요."

  "그리고 정말 힘들고 화나는 일이 있을 때는 언제든지 엄마에게 이야기해도 괜찮아. 스스로 잘하는 게 슬프고 무서운 걸 참으라는 말은 아니거든."


  이렇게 아이와의 상담을 마치고, 아이의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어머니는 정말, 정말 많이 우셨다. 자기가 한 말을 소중한 딸아이가 그렇게 느꼈을지는 몰랐다고 하셨다. 워킹맘으로서 제대로 아이와 시간을 보내지 못한 미안함과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묻어났다.


  "어머니. 그래도 어머님은 아이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어머니세요. 아이가 말하기를, 우리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착하고 멋있다고 하는걸요. 오늘 집에 가시면 아이를 꼭 안아주고 오늘 학교생활은 어땠는지, 어떤 친구와 놀고, 점심은 맛있었는지 이야기를 나눠보세요. 아직 일 학년이고 새 학기니, 아직은 엄마 품에서 어리광을 부려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는 금방 자라난다. 보채지 않아도 어느 순간 쑥쑥 커서, 어느덧 부모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때가 온다. 그러니 아이에게 너무 빨리 어른이 되라고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는 아이다워야 한다.


  이후 어머니와 선생님의 노력 끝에, 그리고 정말 마음에 맞는 단짝친구를 사귄 후 아이는 학교에 적응하여 벌써 3학년이 되었다. 그리고 내년에는 아이의 동생도 곧 초등학생이 된다. 이제는 동생에게 의젓한 누나 그 자체다. 가끔 장난치며


  "어이, 울보소녀." 하고 놀리면

  "아이 선생님!" 하고 몸을 비틀며 도망간다.


  아이의 학교생활이 지금처럼 씩씩하고 밝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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