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반쯤 호기심으로, 반쯤은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을 담아 묻는 질문이지만 두 물음에 대한 내 답은 둘 다 '아니'다. 나는 하고 싶은 게 많은 아이였다. 화가가 되고 싶은 적도 있었고, 만화가가 되고 싶었던 적도, 단순히 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변호사와 변리사가 꿈이었던 적도 있었다. 이처럼 나는 딱 한 가지 꿈만을 좇아 열정을 가지고 나아가는 아이는 아니었다. 성인이 되면 조금 나아질 만도 했겠으나, 교육학과에 진학해서도 딱히 하고 싶은 전공이 없었다. '교육학' 자체는 재미있었으나 선생님을 배출하는 목적이 강한 사범대 특성상, 우리 과 학생들은 대개 복수전공을 선택했고, 나는 고민하다가 단지 책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국어교육과'를 복수 전공하기로 마음먹었다.
역시나. 단순히 독서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국어교육과를 선택한 것은 너무나 얕은 편견이었다. 남을 가르치기 위해 문학을 배우는 것과, 내가 책을 통해 보고 느끼는 것을 표현하는 것은 정말 달랐다. 중세문법과 어순에 어질어질했고, 몇 과목이 '재수강' 판정을 받으면서 나는 내가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칠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빠르게 깨달았다.
국어선생님이 되지 않겠다고 했을 때, 역시나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 4년간의 대학생활이 무의미해졌다던가, 앞으로 어떻게 살 거냐는 질문은 갓 사회에 내몰린 내 마음을 쿡쿡 쑤셨다. 하지만 나는 꽤나 운이 좋은 편으로, 졸업과 동시에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그곳에서 '상담'을 통해 아이들과 만날 수 있는 다양한 길을 알게 되었다.
정신없이 상담 관련 자격증을 취득했다. 미술치료, 음악치료, 학습코칭. 쓸모없어 보이는 민간 자격증이라고 해도 언젠가는 도움이 되는 순간이 오리라 믿었다. 그리고 다시 학사편입으로 심리학을 전공했다. 물론, 학교 계약직 상담사로 일하면서 심리학을 전공해야 했기에 사이버대를 선택했다. 정말 감사하게도, 모든 과목에서 올 A+을 받자, 장학금과 함께 반학기 조기졸업이라는 영광이 주어졌다. 덕분에 나는 한 학기 공백 없이 교육대학원에 입학할 수 있었고, 한 번의 낙방 끝에 지금은 전문상담교사로서 학생들과 함께 나란히 걷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이, 대학을 졸업하고 6년 동안의 일이다. 빙빙 돌아서 온 길. 가끔 사람들이 "상담교육과가 따로 있나요?" 라며 물으면, 웃으면서 그간의 과정들을 간략히 말한다. "와, 그럼 학사만 3개네요?" 다들 감탄한 듯이 말하지만, 나는 왠지 부끄럽다. 왜냐하면, 정말 좋아하고 하고 싶었던 것을 찾지 못한 방황의 증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제 인생은 망했어요."
"선생님은 공부 잘해야 될 수 있죠?"
많은 아이들이, 본인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요즘에는 인플루언서나 유튜버가 꿈인 아이들이 점점 늘고 있는 추세이긴 하다. 하지만 이 또한 아이들의 잘못된 편견으로 왜곡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한 번은 6학년 여학생과 인기 뷰티 유튜버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잘 나가는 유튜버들은 다 금수저예요."
"금수저?"
"네. 다들 엄청 큰 집에 혼자 살고, 명품도 턱턱 사고. 해외여행 다니고, 화장품도 로드샵 말고 백화점거 써요."
"안 그러는 유튜버들도 많을 텐데."
"있긴 하죠. 근데 그런 애들은 인기가 없어요."
나는 가끔 혼란스럽다. 꿈은 목표와 동의어일까. 아이들과 진로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목표와 꿈에 대해 혼재되어 있는 모습을 마주한다. 나 역시 상담교사가 되고 싶었지만, 그건 꿈이었을까 목표였을까. 상담교사가 되었으니, 나는 꿈을 이룬 걸까. 아니면 목표를 달성한 걸까.
"저는 프리파라가 되는 것이 꿈이에요!"
"프리... 뭐?"
"아이 참. 선생님! 프! 리! 파! 라!"
1학년 여학생의 말에 '잠시만'을 외치고 재빨리 검색창에 프리파라를 검색한다. '아동용 애니메이션이잖아!!!'
"저는 프리파라처럼 노래도 잘 부르고, 마법으로 변신도 하는 사람이 될 거예요."
아이의 순수한 동심을 지키기 위해 '멋진 꿈이네.'라고 이야기했지만, 살짝 당황했다. 불과 얼마 전 6학년 여학생과 '금수저 토론'을 마친 뒤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법 소녀'라. 갭이 커도 너무 크잖아. 하지만, 멋진 꿈이다. 왠지 심장이 간질거리는 느낌도 든다.
나 역시 어렸을 적 세일러문을 보면서 악을 물리치는 정의의 사도가 되고 싶었던 적도 있었고, 한참 해리포터 열풍이 불었을 때는 어디서 마법학교 초대장이 날아오지 않을까, 나는 어떤 기숙사에 배정받을까 상상했던 적이 있다.
꿈과 목표. 아직은 나 역시 확답을 못하겠다. '행복하게 사는 것' '건강하게 사는 것' 이건 꿈일까. '작가가 되는 것' '로또에 당첨되는 것' '돈 많은 백수로 사는 것' 이건 목표일까.
어떻게 보면, 초등학생이기에 진로상담은 가장 어렵다.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원석 같은 아이들이기에 나의 말 한마디기 더 조심스럽다. 공부를 못한다고, 외모가 빼어나지 않다고 아이들의 꿈을 포기하게 하고 싶지 않다. 마음껏 꿈꾸고 방황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30살에야 내 길을 찾았지만, 여전히 '이게 맞나.' 하며 고민하고 있는 애어른인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