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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뀨냥 Mar 03. 2024

5학년 소년이 관종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1)

체육시간 X맨은 나야 나.

  "아!! 진짜 저 관종 때문에 미치겠어요!!"


  5학년 남학생 무리가 상담실 문을 확 열고는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분개한다. 그 옆에는 다른 남학생이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다.


  "쟤... 쟤 때문에. 우리 반이 매일 지고... 옆반 애들이 우습게 봐요."


  그 말을 시작으로 남학생들이 각자 하소연을 쏟아낸다. 여러 이야기들이 뒤섞인 상담실 안은 말 그대로 북새통. 난장판이다. 그 와중에 여자아이들도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상담실 문 앞에서 자기들끼리 웅성웅성 수군거린다.


  "잠깐! 얘들아, 너희들이 열받은 건 다 알겠어. 그런데 선생님도 잠시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네. 거기 1반 반장이지? 반장은 잠깐 기다려 주고. 아 그래. 1반 또래상담자 아연아. 너도 잠시 남아주렴."


  그렇게 아이들을 달래서 교실로 올려 보내고는 반장과 또래상담자 학생에게 정확한 자초지종을 들었다.


    아이들의 말을 정리해 보니 이렇다. 같은 반에 D라는 남학생이 있는데, 이 애가 체육시간에 다른 반과 대항하여 축구나 피구를 하면 자기 혼자 'X맨'역할을 자처하며 같은 반 친구들의 승리를 방해한다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자기의 '트롤짓(아이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렇다.)'에 반성은커녕, 오히려 약 올리듯 승리한 다른 반 학생에게


  "야! 너네 나 덕분에 이긴 줄 알아."


  라며 뿌듯해하니 아주 기가 막히다고 한다. 체육선생님이나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려도 딱 그때만 꾸중을 들을 뿐, 매번  같은 상황이 반복이 되어 반장 입장에서도 퍽 난처하다고 한다.


  "게다가 오늘은 2반 애들이 저희 반 남자애들한테 5학년 최약체라고. 쪼랩이라고 놀리기까지 해서요. B가 2반 애 멱살 잡고 싸우려던 거 애들이 뜯어말리고, 울고 난리였어요."


  무섭다! 아이들의 승부욕! 하지만 남학생들이 학교 체육시간에 얼마나 진심인지는 알고 있다. 아이들이 학교 시간표 중 제일 기대하는 수업 중 하나가 '체육'인데, 이를 반 아이 한 명의 이해 못 할 행동으로 매번 엉망이 되니 얼마나 속상하겠는가.


  "아연아. 너는 D가 왜 그런다고 생각해?"

  또래상담자 아연이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모르겠어요. 원래는 안 그랬거든요. 걔가 좀 장난기가 많긴 해도 그렇진 않았는데."




  

  "제 잘못 아니에요."


  상담실에 온 D군의 첫마디다.


  "알아. 혼내려고 부른 거 아니야. 하지만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으면, 친구들도 선생님도 너를 오해할 수밖에 없어. 저번에 너네 반에서 선생님이랑 수업할 때 기억나? 너 발표도 열심히 하고, 잡담하는 친구들에게 선생님 대신 주의도 주고 해서 고마운 기억이 있거든. 그래서 선생님은 네가 체육시간에 왜 그랬을까, 너만의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해."

  "없어요. 그냥 그러고 싶었던 거예요."


  어렵다. 마음의 문이 꽉 닫혀있다. 조금 더 일찍 이 사태에 대해 알았으면 좋았을까 하는 후회도 생긴다. 나라고 독심술사처럼 학생들의 마음을 딱딱 읽는 마법사는 아니다.


  "선생님은 말이야... 초등학교 때 체육시간이 진짜 싫었거든."

  "왜요? 체육이 왜 싫어요?"

  "왜긴. 운동 못하니까지. 줄넘기같이 혼자 하는 건 괜찮은데 말이야. 피구나, 축구, 발야구는 나 때문에 다른 애들이 피해 보는 게 싫었어. 남자애들이 엄청 느리게 뛴다고 놀리기도 했고."

  "헐. 걔네 못됐네요."

  "그렇지? 근데 생각해 보니까. 이기고 지는 거에 상관없이, 그냥 열심히 친구들이랑 뛰어놀아볼걸 하는 후회가 들더라."

  "왜요?"

  "어른이 되면, 여럿이서 우르르 모여서 흙먼지 묻혀가며 스포츠 할 일이 정말 없거든."


  그리고 잠시 침묵이 이어지고 내가 D군에게 물었다.


  "너는, 체육시간이 즐겁니?"

  내가 체육이 싫다고 했을 때 아이의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면, 이 아이도 다른 남학생처럼 운동을 좋아하는 편일 것이다. 그런데 왜 굳이 그런 욕받이 역할을 자처한 걸까.


  "체육은 좋아하는데, 경쟁은 싫어요."

  "응?"

  "1학기 때 옆반이랑 축구했는데, 솔직히 질 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잖아요? 근데 A가 제가 자기한테 패스 안 해줘서 졌다고, 왜 실력도 없는데 나대냐고 해서 싸웠거든요. 그 뒤로 왠지 우리 반 이기라고 뛰는 게 싫어졌어요. 적어도 제가 트롤짓해서 옆반이 이기면. 옆반애들은 고맙다곤 하거든요."


  그렇네. 운동은 즐겁고 재미있지만, 의지와 의욕이 꺾여버린 거다. 감성적이고 생각이 많은 아이다. 옆반 아이들의 '고맙다' 놀림 섞인 이 말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아이.


  아이고. D군의 행동을 결코 옹호하거나 마냥 감싸줄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때 누군가 한 명이라도


  "괜찮아. 그럴 수 있지."

  "이기고 지는 게 중요한 게 아냐."


  이렇게 말해 주었다면 이 아이는 의도치 않은 X 맨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친구들하고 계속 오해가 쌓인 채로 지낼 거야?"

  "내버려 두어요. 지들이 뭐 축구선수라도 된다고. 고작 반경기에 울고 난리람."


  오해의 골이 깊다. 게다가 이번 사례는, 아이 한 명의 문제가 아닌. 반 전체에 번진 깊은 감정의 골이다. D와 A군을 불러 오해를 풀고 사과를 시킨다고 해도, 이미 형성된 D군의 이미지와 아이들의 분노는 어찌할 것인가.


  D군을 돌려보내고 아이들의 담임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선생님... D군과 방금 이야기가 끝났는데요. 혹시 시간표 변경이 가능하다면 2회기 정도 창체시간에 제가 수업을 해도 될까요? 학부모님들께서 왜 우리 반만 하고 의아해하시면. 5학년 각반별로 2회기씩 맞춰주셔도 됩니다. 어차피 5학년학생들 모두에게 필요한 내용이기도 해서요."

"아! 5학년 전체 2 회기면 선생님들과 얘기해서 시간표 편성 가능할 거 같아요! 감사해요 선생님! 그런데 수업내용은 뭐라고 말씀드리면 될까요?"


  내가... 내 무덤을 판다, 이렇게 또.

  사실 상담교사의 수업은 단위학교에 따라 제각각이다. 공식적으로 편성된 수업시수는 없으며, 그렇기에 필요시에는 창체나 도덕시간을 사용해 들어간다. 어떤 상담교사는 자기는 수업은 전혀 하지 않는다고 한다. 수업을 하면 아이들과의 이중관계가 형성되어 상담의 효과가 떨어진다나.


  물론 그분들의 이야기도 맞다. 하지만 이왕이면, 나는 학교라는 무대를 최대한 활용해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다. 그러니, 이번에도 힘내보자.


"네, 선생님. 격려집단상담프로그램. 학부모님들께는 [다독다독 프로그램]으로 주간학습안내 부탁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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