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가을날. 할머니 한 분이 상담실의 문을 두드리셨다. 할머니는 2명의 손자를 홀로 양육하고 계셨는데, 그중 첫째 아이가 문제가 많다며 고민을 털어놓으셨다.
할머니의 호소문제는 이러했다. 아이가 핸드폰만 하고, 유독 동생을 귀찮게 굴며 괴롭힌다는 것이다. 집에서는 동생을 그렇게 괴롭히는데, 학교에서는 애들이 시키는 대로 얌전히 다 맞춰 준다며, 이건 바보가 따로 없다고도 말씀하셨다. 이에 신경정신과도 방문해 보았는데, 경계성지능과 ADHD가 나왔다며 고개를 저으셨다.
"경계선지능이라 애가 그렇게 됐나?"
내게 묻는 할머니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열심히 이야기를 털어놓는 할머니의 말속에서 나는 무언가 불편한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둘째가 형을 돼지라고 하면서, 친구들 앞에서도 '야, 야.' 한다니까요, 글쎄."
할머니는 둘째 손자가 형을 무시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그때는 자신도 혼을 낸다 하셨다. 하지만 할머니의 말을 듣다 보니, 뭔가 이상했다. 할머니의 말속에서도 은연중에 첫째 손자를 무시하는 뉘앙스의 말들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둘째는 단원평가에서 90점 맞아도 분해하는데, 얘는 30점 맞아도 헤헤거려요."
"경계선지능인 애들이 나중에 군대에 가서도 문제가 많다는데."
"얘가 동생이 가만있어도 툭툭 건드린다니까요."
아, 알았다. 그 아이는 스스로 자신을 인정해 주지 못하는데, 주변에서도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는구나. 생각이 여기에 다다른 순간, 나는 그 아이의 마음을 가늠해 보며 울컥했다.
[많이 외로웠겠구나.]
순간, 나는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님, 아이에게 칭찬은 많이 해주시나요?"
"아니, 칭찬을 많이 해야 하는 건 아는데, 애가 30점 시험지를 내밀면 울화가 치밀어 오르고 영 답답해서요."
인정은, 나 스스로 해주는 것이 제일 좋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게 우선이다. 하지만, 이 또한 주변에서 인정을 받은 경험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그 아이의 낮은 자존감은, 경계선지능으로 인한 것보다도, 자신을 바라보는 누군가의 태도에 의한 것이었을 확률이 높다.
"할머님, 여기서 말씀드리고 싶은 게요. 지금은 아이가 공부를 잘하는 것이 우선이 아니잖아요? 먼저, 아이가 행복한 아이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에, 할머니는 손자가 공부는 낮은 점수를 받아도 분해하지 않으면서, 동생과 함께하는 게임이나 운동은 지면 소리를 지르고 분해한다며 이해할 수 없다고 하셨다.
그야, 이 아이가 가장 인정받고 싶은 존재는 남동생이니까. 공부보다 손쉽게 인정받을 확률이 높은 게임과 운동. 그에 대한 기대치가 높기 때문에, 기대가 무너지면 불같이 화를 내는 거다.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큰데, 그 실망감을 자신에게 향하기엔 에너지가 없으니, 그걸 분노의 형태로 표출하는 거다.
작은 칭찬과 격려가 아이의 마음에 차곡차곡 쌓이면, 그것이 곧 자존감으로 나타난다. 이 아이의 케이스는 아마 주변 환경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장기전이 될 것이다. 곧 중학생이 되는 아이가 환경이 바뀌고, 좋은 선생님과 친구를 만난다면 모르겠지만. 가장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줘야 할 가족에게 기대와 실망이 반복되니, 인간관계에서 이 아이는 제일 먼저 '포기'를 배웠다.
무언가 결과가 나타나야지만, 눈으로 보여야지만 칭찬과 격려를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마음껏 칭찬하고 격려를 보여주자. 이 모든 것은 아이의 행복을 위한 거름이 된다. 살아 숨 쉬는 것만으로도, 살아가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우리 아이들이다.
그러니,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할 거예요. 모두를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