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 전날엔 왜 잠이 오지 않을까?
2024년 3월이 되었다. 교사의 한 해는 어쩌면 3월부터 시작해 다음 해 2월로 마무리되는 것은 아닐까? 개학 전날인 어제는, 새벽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평소에도 걱정과 생각이 많은 나지만, 개학 전날은 유독 더 생각이 많아진다. 다행히 나만 그런 건 아닌 듯. 이름 모를 동료 교사들의 인스타 피드에는 새 학기에 대한 불안과 응원이 넘쳐흘렀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 7시에 제일 먼저 학교에 도착해서, 바로 상담실 청소를 시작했다. 방학 중에도 틈틈이 정리하고 청소를 했건만, 내 손이 닿아야 할 부분은 계속 눈에 들어온다. 오늘의 꿀팁은 바로 스티커 자국 제거 방법! 인터넷에서 본 대로, 스티커 자국에 선크림을 듬뿍 도포하고 방치후 마른 수건으로 문질러 닦았더니, 정말 깨끗하게 제거가 되었다. 스티커 제거제를 쓸까 했으나, 아이들이 많이 오는 상담실에, 성분이 좋지 않은 스프레이 제거제를 쓰고 싶지는 않았다. 선크림의 도움으로 때처럼 검게 얼룩진 자국들을 떼어냈더니 상담실이 아주 환해졌다.
파티션에 붙은 자료들은 2024년 버전으로 교체해 주고, 업무포털에 쌓인 공람문서와 결재문서를 처리하다 보니, 어느새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새 학기 첫날은 정신없이 메시지가 쏟아지는 날이기도 해서, 밀려오는 메시지를 읽고, 회신하고, 필요한 부분은 도움과 협조를 요청하다 보니 오전이 훌쩍 흘렀다. 상담실 서류함에 라벨링을 하고, 최근 아이디어가 떠오른 상담 일정 표시 자석판과 위클래스 안내물을 만들고 나니 그제야 한숨 돌릴 시간이 난다.
아니,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이람? 멀쩡히 작동하던 프린터기에 오류버튼이 뜨며 인쇄가 되지 않았다. 본체에 연결된 USB를 다시 꽂아도 여전했다. 새 학기 액땜이라 치고 A/S 수리요청을 하니 기사님이 바로 오셔서 해결해 주셨다. 새 학기라 이렇게 금방 고쳐주실 줄은 몰랐는데! 교육청에서 오신 기사님이 슈퍼히어로처럼 느껴진 순간이었다.
똑똑.
"선생님, 놀아도 돼요?"
"오늘은 어려울 것 같네."
나의 말에 이제 3학년이 된 학생 두 명이 아쉽게 발걸음을 돌린다. 하지만 교실이 아직 정돈되지 않아서 학생들에게 놀이 시간을 줄 수 없었다. 게다가 하필 아이들이 찾아왔을 때 나는 고장 난 청소기를 고치고 있었다.(왜 새 학기 첫날에 물건들이 탈이 나는가.) 구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불용처리(폐기)를 할 수 없다고 하니, 어떻게든 고쳐서 쓰겠다는 오기가 발동했다. 퀘퀘 묵은 먼지가 가득한 곳에 아이들을 놀게 할 수는 없으니, 아쉽지만 오늘은 출입불가다. 그나저나 개학 첫날부터 위클래스에 오다니! 여간 부지런한 학생들이네. 내일은 아주 깨끗해진 교실에서 힘찬 미소로 아이들을 반겨 볼까나.
오후에는 1년 동안의 운영 계획서를 쓰고, 물품 구입 사이트에 필요한 물건을 담았다. 보드게임 몇 개, 상담도구 몇 개를 담았을 뿐인데 예상한 금액을 훌쩍 넘는다. 1년간 주어진 예산으로 상담실을 잘 운영해야 할 사명이 있으니, 장바구니에 담아둔 물건의 우선순위를 따져가며 삭제 버튼을 누른다. 나의 하루 포션 같은 비타민을 마셔주고, 중간에 행정실에서 요청한 서류를 제출하러 다녀오니 정신없이 하루가 끝났다.
학교의 첫날은 바쁘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또 어떤 학생들이 상담실에 찾아올지, 나는 그 무엇도 예측할 수 없다. 학교의 업무는 늘 변수가 많다. 그러니 아무리 걱정해도 별 수 없다. 그저 오늘처럼, 매일을 힘내며 하루하루를 쌓아가는 수밖에는.
퇴근 시간. 남편을 기다리며 노래를 듣고 있는데, 친하게 지내는 비교과 선생님들의 톡이 날아온다.
[다들 오늘 하루 고생 많으셨어요!]
[우리 적응하고 나면 4월에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
아. 나만 정신없는 하루가 아니었구나. 각자의 고충과 격려가 묻어나는 톡을 읽으며,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그래도 그저 힘듬으로만 기억되지 않는, 묘한 하루였다. 오랜만에 듣는 아이들의 목소리와 학교의 소음. 이 모든 것들이 학교의 활력이자 활기다.
나의 손길이 묻은 작은 상담실. 올 한 해도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