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사와 교사,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
한동안 바쁜 나날들이 이어지고, 이제 조금 숨통이 트이려고 할 때 사건은 일어났다.
"선생님이 용건 없이 오면 안 된다고 했지!"
좁은 상담실 안에 내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눈앞의 조그마한 아이는 나를 슬쩍 노려보다 장난기를 거둔 채 상담실을 나가버린다.
얼마 전부터, 1학년 남학생 한 명이 갑자기 상담실에 와서 간식을 달라고 조르거나, 나에게 장난을 치는 일이 생겼다. 처음에는 간식을 달라는 학생의 말에 나름 조용하고 단호하게 돌려보냈다.
"간식은 위클래스에서 상담을 받거나, 활동을 한 친구에게 주는 거야. 안돼."
아직 학교가 익숙지 않은 다른 1학년들도, 몇 번 상담실에 와서 간식을 내놓으라고 조른 적이 있다. 하지만 단호한 내 태도에 더 이상의 흥미를 잃고 각자의 생활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 남학생은 달랐다. 몇 번이고 와서 '하리보'젤리를 요구한다.
"근데 여기 하리보 없어요?"
"상담실은 간식받으러 오는 곳이 아니야. 그리고 상담중일 때는 오는 거 아니라고 했지."
그렇게 돌아가나 싶더니, 다음 쉬는 시간에 또 상담실의 문을 벌컥 연다.
"선생님, 저 앞으로 상담실에서 살 거예요."
"집주인이 허락을 안 했는데?"
"친구가 괜찮대요."
"선생님이 안 괜찮아. 교실로 돌아가세요."
남학생은, 헤헤 거리며 교실로 돌아가는 듯하더니 나를 쓰윽 쳐다보며 "이따가 또 올게요!" 라며 뛰어간다. 이렇게 수십 번의 실랑이가 이어지니, 나로서는 이걸 어찌해야 하나 싶었다.
상담실은 학생들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 맞다. 하지만 학교 상담실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운영된다. 나는 우리 학교 상담실이 학생들에게 교내에서 제일 편안하고 친근한 공간이 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일 우선순위인 상담보다 학생의 재미와 오락이 우선시 되는 것은 사양이다.
그렇게 학생을 돌려보낸 후, 갑자기 쏟아지는 업무에 정신없이 타자를 두드리고 있을 때, 상담실 문이 살짝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가 났다. 1학년 교실 앞에 상담실이 위치해 있어, 가끔 1학년들이 장난으로 문을 두드리거나 하기 때문에, '이번에도 학생들이 장난치다가 실수로 문이 열렸나 보군.'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래서는 안 됐었다. 문소리가 들리자마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확인했어야 했다. 그 뒤 한 20초가량이 지났을까.
"왁!!!!!!!!"
"으악!!!!!!!"
교실에 몰래 숨어있던 '그 아이'가 갑자기 위로 튀어 오르더니 큰 소리를 내며 나를 놀라게 했다. 평소에도 매우 잘 놀래는 나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반사적으로 소리를 질렀고, 그런 내 반응을 본 남학생은 성공이라는 듯 깔깔깔 웃기 시작했다. 더 황당한 것은 그다음 이어진 남학생의 말.
"다음에 또 올게요."
순간, 이건 아니다 싶었다. 놀라고 황당한 마음속에 분노가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었다. 문고리를 잡고 상담실을 빠져나가려는 학생 뒤로 나는 평소보다 큰 소리를 내며 소리쳤다.
"너 내가 용건 없이 오면 안 된다고 했지!!!! 지금 이게 무슨 행동이야!!!!"
한 번도 화를 내지 않던 선생님이 낸 큰소리에, 학생도 놀라 표정을 싹 굳히더니 내 눈을 바라보지 않고 말한다.
"이제 안 올게요. 됐죠?"
사과나, 자신의 행동에 대한 반성도 없다. 그러고는 쪼르르 교실로 가는 그 아이를 잡아다가 긴 설교를 늘어놓고 싶었지만, '상담교사'라는 내 위치가 순간 브레이크를 걸었다.
'그래도 나는 상담교사인데. 저 아이도 언젠가 내담자로 만날 수도 있는데. 지금 더 화를 내면 라포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
또, 속물적으로 이런 생각도 들었다.
'더 화를 냈다가 아동학대로 민원이라도 들어오면 어쩌지.'
여러 가지 복합적인 마음들이 섞여, 나는 더 이상 화를 내지 못하고 아이를 돌려보냈다. 지금 차분한 마음으로 생각해 보면 '선생님이 너 때문에 많이 놀랐잖아. 앞으로는 이런 행동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라는 부드러운 말이 그 아이에게 닿을지도 의문이다.
아이가 돌아간 후 몇 분 간 갑자기 온몸에 힘이 빠져 의자에서 축 늘어진 채 앉아 있었다. 조그마한 아이에게 화를 냈다는 죄책감도 들었고, 왜 내가 이런 일을 당했나, 내가 우습게 보이나 하는 회의감도 들었다. 그렇게 있다가, 교내 메신저로 그 아이의 담임 선생님께 메시지를 보냈다.
[최근 한 남학생이 위클래스에서... 그리고 오늘은... 그러니 학생들에게 타 교실 방문예절에 대해 다시 한번 안내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그러고는 같은 초등학교 상담교사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 상황에서 현명한 대처가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도 나도 명확하고 똑 부러진 해답은 내지 못했다. 앞으로도 우리가 예상치 못한 일들이 있을 거고, 더 어려운 사례도 많이 만나겠지.
상담사이면서 교사. 이건 양날의 검이다. 때때로는 매우 큰 장점이, 때로는 나의 발목을 잡는 단점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이것 한 가지는 분명하다. 복도에서 그 아이를 마주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안녕.' 하고 인사를 건넬 거라는 것. 그 학생 또한 소중한 나의 아이라는 것.
그러니 오늘도 이렇게 상담실의 문을 열며, 힘찬 파이팅을 외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