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퇴직자의 고백
전에 했던 대부분의 강의는 학부모를 대상으로 했던 터라 수강생들의 연령은 3~40대였다. 그리고 그들은 “자녀”라는 공통분모로 똘똘 뭉쳐있어 강의목적과 주제는 어렵지 않았다. 인문학을 강의할 때도 그들은 결국 ‘자신’을 찾기보다는 ‘자녀를 잘 키우고 싶은 욕구를 가진 나’를 찾길 원했고 결국은 ‘나’보다는 ‘부모’의 이름으로 살길 원했다. 나 또한 그리 살았으니 무어라 할 말이 없지만, 그때에도 간혹 ‘나’라는 사람을 생각하면 내 인생에 ‘내’가 없어 슬프기도 했다.
퇴근 후, 오랜만에 <역사를 통한 인문학>을 강의하러 갔다. 내 작은 소견으로 ‘대략 3~50대의 여자분들이 오겠지’라고 생각하여 그에 맞는 멘트를 준비했다. 앗! 띠로리~ 들어오시는 분마다 머리에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있었고 나는 동공지진이었다. 나보다도 한참 선배이신 분들과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마음은 멘트를 바꾸느라 소란스러웠다. 내 소개를 마치고 돌아가며 이 강의를 수강한 목적에 대해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머리는 회색빛으로 약간 마른 듯하게 깔끔한 인상을 가진 남자분이 어색한 듯 조용히 일어나시더니 “저는 35년 일 하다 얼마 전에 퇴직을 했습니다. 다시 다른 일을 찾는 중인데 요즘 고민이 생겼습니다. 제가 누군지 잘 모르겠다는 겁니다. 아휴, 답답합니다. 그래서 인문학이 뭔지도 잘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제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생각하고 저를 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하셨다. 내심 깜짝 놀랐다. 나이 지긋한 남자분의 입에서 ‘나’를 찾고 싶다는 말을 들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저쪽에 앉아있던 “왜 이런 걸 신청해 가지고, 별 걸 다 하네.” 하며 투덜 대시던 머리 하얀 남자분도 일어나서는 “제가 여태 일만 했습니다. 근데 퇴직하고 나니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뭘 배우려고 하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나가서 기억도 못하겠더라고요. 여기서 일단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하신다. 이 말을 들으니 아빠 생각도 나고 마음이 울렁거렸다.
한 여자분은 “제가 다시 재취업이 되어 이 나이에도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집도 여기서 1시간이나 가야 하는데 뭐라도 배우고 싶어서 왔습니다. 저는 나이와 상관없이 하고 싶은 일은 언제든지 할 수 있고,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곳에서 이 생각이 틀리지 않다는 걸 알고 싶습니다.”라며 온화한 미소를 지으셨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뒤, “저는 여기 가르치러 온 강사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제가 이곳에서 배워 돌아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이의 많고 적음은 내 생각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아빠는 퇴직 후에 나이가 들어 시골에서 휴양하러 내려갔는데 지금은 그곳에서 작업반장까지 맡아 일하십니다. 왜냐고요? 그곳에서 제일 어리기 때문입니다.”
“껄껄 껄껄”
지금이라도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하는 이분들이 멋있어 보였다. 앞으로 3개월 동안 진행되는 강좌를 통해 ‘나’를 잘 찾아가시도록 돕는 조력자가 되기로 다짐하며 지금껏 일만 하며 살아온 이분들과, 더불어 이 나라를 일군 지금의 60~70대분들의 인생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