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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자의 전성시대 Jun 20. 2024

너를 꼭 잡고 잘 키울 수만 있다면

ㅇㅇ아 사랑한다

 그 아이는 머리가 무척이나 길었다. 1학년 들어올 때부터 통통하고 긴 머리를 갖고 있는 귀여운 여자아이였다. 아이의 눈빛은 사랑스러웠고 살짝 부끄러워하는 모습도 무척 귀여웠다. 그러나 아이는 늘 정돈되지 못한 모습이었고 머리는 늘 부스스 깨끗하지 않았다. 


 자세히 바라보면 눈빛도 어딘가 불안하고 소극적이며 따뜻한 관심을 받고 싶어 했다. 이때 아이들 사이에서 양갈래로 머리를 땋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아이도 그 머리를 하고 싶어 했고, 나는 두 딸을 키운 솜씨를 발휘해 2달 정도 아이의 머리를 멋들어지게 아침마다 땋아주었다. 아이는 만족해했고 내게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 아이는 자랐고 이제 고학년이 되었다. 아이는 더 깊이 자신의 불안을 숨겼고 학습이나 생활태도는 눈에 띄게 뒤처져 갔다. 아이의 어머님은 엄마의 이름보다 자신의 이름으로 사는 것이 중요한 분이었고 아빠는 지방출장도 많고 바쁘신 분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아이의 결핍의 원인을 분석할 수 있었다. 그러니 아이에게 더 정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너무 감사하게도 이 아이와 완전 케미가 잘 맞는 분이 담임 선생님이 되셨다. 이분은 이 아이의 결핍을 들여다보고 공감하며 눈시울을 적시며 가슴 아파해 주었다. 나에게 오셔서 아이의 요즘 행동들과 상태를 이야기하며 글썽글썽한 눈망울을 보고 있노라니 내 마음이 절절했다. 이런 선생님을 나조차 얼마 만에 보는지....


 아이를 위해 우는 엄마의 눈물은 사랑이다. 자신과 아이 사이에서 자신을 버리기 위해 흘리는 눈물이기 때문이다. 이 눈물은 필연적이다. 정상적이라면 아이를 키우며 눈물 한 방울 안 흘리는 어미는 없을 것이다. 


 학생을 위해 우는 교사의 눈물은 고결하다. 흔하지 않으니 귀하고 그 마음이 뛰어나니 존경할 만하다. 진짜 마음이 없으면 이리 눈물이 흘러가지 않으니 아이에게 이 선생님은 진심인 것이다. 아이에 대해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다시금 '아이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할까?' 하는 긴장감이 생겼다. 


 이제 아이는 변할 것이다. 아니, 이미 변하고 있다. 담임 선생님과 내가 아이를 눈 안에 넣어 살피고 있으니 말이다. 다만 이 아이가 어느 어른을 만나느냐가 아닌 스스로 환경과 상관없이 잘 성장할 수 있는 마음밭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어느 날 보니 꼿꼿이 잘 성장한 한 그루의 나무가 되어 자신 있게 태양빛을 받아내고 스스로 그늘막을 만들어 내는 어른이 되길 기도한다. 

© jan_huber,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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