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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자의 전성시대 Jul 05. 2023

참외는 참 외롭다

나도 외롭다?

 집이 멀어졌다. 이사를 하고 난 뒤, 출퇴근 시간이 2시간이 되었다. 무료함을 달래며 라디오를 켰고 며칠째 같은 시간, 같은 방송을 듣고 있다. 워낙 생각이 많은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기 위해 라디오를 들었던 건데 음악 외에도 칼럼이나 에세이 등 들으며 생각해야 할 것들이 있었다. 


 한 번은 ‘참외는 참 외롭다’에 대한 내용의 칼럼을 DJ가 낭독해 주시는데 출근도 잊을 만큼 글 속에 흠뻑 빠졌었다.      


“오이와 수박도 외롭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박목-박과에 속한 식물들이지만 다른 성질들이 우세해서 세 언어 공히 같은 이름을 얻지는 못했다. 그러나 참외만은 ‘참’이라고 진짜임을 강조하는 모자까지 척 쓰고 ‘외로움’의 절대강자가 되어 수천 년을(아마도!) 버텨오고 있다. 참외가 단순히 단물 가득한 과일이 아니고 ‘외로움’을 표상하게 된 비밀을 나는 다석 유영모 선생의 제자인 박영호 선생에게 처음 들었다.    

외는 마디 하나에 꽃이 하나씩만 핀다. 다른 식물은 대개 쌍으로 꽃이 피어 열매도 쌍으로 달리는데 박과 식물만은 홀로 꽃피니 열매도 하나뿐이다. 사과도 배도 대추도 감도 곁의 놈에게 의지하건만 외만은 아니다. 홀로 피어야 열매가 둥글게 자랄 수 있다. 방해받지 않고 마음껏 몸이 굵어질 수 있다. 몸 안에 단맛을 충분히 저장할 수 있다. 외가 홀로 비와 어둠과 바람과 땡볕을 견디고 또 누리는 것은 그 길만이 안에서 익어가는 성숙을 담보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외’의 진정한 의미다.”  

출처 : 더뷰스(http://www.theviews.co.kr)   

  

 엄마는 내가 어릴 때부터 병약하셨다. 딸 하나만 달랑 낳고 더 못 낳은 엄마를 시댁에서는 꽤나 구박했다. 엄마는 집 한 채 값이 넘는 돈을 들여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둘째를 갖기 위해 애써야 했다. 하지만 엄마는 둘째를 갖지 못했다.


 무남독녀로 살아온 나는 어릴 때 형제. 자매가 있는 아이들을 부러워하며 자랐다. 신나게 놀다가 저녁이 되면 자기들끼리 손잡고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너무나 부러웠고 혼자 남겨진 나는 엄마 손을 잡고 들어갔다. 엄마가 저녁을 하시는 동안 늘 징징거리며 나랑 놀아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엄마가 나랑 놀아주면 저녁을 먹을 수 없음을 깨달은 순간부터 나는 책을 읽었고 다행히 책이라는 친구와 꽤 오랜 세월 벗하고 있다. 



 크면서도 혼자라는 외로움이 밀려오면 다른 대체 할 것들을 찾아 그 외로움을 물리쳤고, 그러면서 그 방면으로 도가 텄다. 그렇다고 외롭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자매끼리 붙어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고, 결혼해서 자매의 가정끼리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 가는 모습을 보면 부러웠다. 


 가장 외로운 순간은 부모님에게 무언가 일이 생겼을 때이다. 부모님의 병환으로 내 마음도 아프고 무너지는데 현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움직여야 했다. ‘나와 똑같은 감정을 갖는 사람이 한 사람만 있어서 마음으로 의지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눈물 나게 외로웠다. 


 혹자는 “형제 많아도 한 놈만 수발들더라!”하며 위로해 주셨지만 나는 돈이나 시간투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같은 마음으로 내 부모의 문제를 바라봐 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른 아침에, 출근하다가, 갑자기, 라디오를 듣는데, 나의 어린 시절부터 겪었던 모든 일들이 떠올랐고 ‘지금의 나는 외로운가?’에 대해 스스로 물었다. 나이가 들면 더 외로워진다고들 하는데 감사하게도 예전보다는 덜 외로워졌다. 내가 울면 나를 바라보는 딸과 가족이 있고, 내 마음을 돌아봐 주는 하나님이 주신 자매들도 생겼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본질로 들어가자면 나는 나와 친해지고, 나를 이해하고, 나를 북돋아 주고, 내가 그럴 수 있음을 알아주니 덜 외로워진다. 타인은 늘 나를 외롭게 한다. 결국 나를 외롭지 않게 만드는 건 '나'이더라. 


  외로웠던 참외가 그리 단맛으로 익어가 우리에게 맛의 기쁨을 주듯, 홀로 비와 어둠과 바람과 땡볕을 견디고 밖이 아닌 내 안에서 익어가는 성숙을 맛본다면 결국 외로움을 이길 평안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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