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봉평
<갯마을 차차차>라는 나름 흥행했던 드리마의 남주인공 김선호가 바다를 등지고 읽던 것으로 유명해진 책이 있다. 바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이다. 드라마 주인공은 세속적인 도시를 벗어나 바닷가 마을에 내려와 평화롭게 삶을 살아가는데, 이 책의 작가 소로의 삶과 많이 닮아 있다.
또한 나의 최애 영화인 <죽은 시인의 사회> 속 명대사로 인용된 책이기도 하다.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모임을 할 때마다 반드시 읇조리던 대사인데, 삶의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방향성을 어디로 두어냐 하는지 깊이 고민하게 만드는 글귀이다.
이렇듯이 책 <월든>은 고전으로 이름값을 제대로 하는 귀한 책이다. 책의 앞장부터 맨 뒷장의 마지막 문단까지 빽빽하게 마킹을 하며 인덱스를 덕지덕지 붙이며 읽었다. 나의 인생 철학과 사뭇 비슷해 소로에게 응원받는 기분으로, 시종일관 행복하게 읽는 시간이었다.
이 책은 세속적이라고 표현한 도시로부터 2년여간을 떠나 숲 속 가운데 월든이라는 호수가 보이는 자리에 나무집을 짓고,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농사도 짓고, 자연을 관찰하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풍부하게 써내려 간 소로의 일기 같은 에세이집이다.
책을 읽는 내내 나의 월든인 봉평이 계속 오버랩되어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나의 노후를 꿈꿀 때의 공간적 배경은 대부분 봉평의 자연 속이기에 소로의 세밀한 감정표현에 금세 동화되었다.
얼마 뒤 찾아간 봉평 부모님 댁은 화려하지만 겸손하게, 눈에 띄지만 어울리게 가득 핀 꽃들로 축제였다. 가만가만 조용히 핀 꽃잔디와 자기 색을 살며시 누르고 주변을 환히 밝혀주는 다양한 색의 진달래와 심심하지 않게 툭 튀어나온 조팝꽃까지 아름다움을 이야기하자면 월든 저리 가라 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비단 꽃만 아름다우랴! 초록잎이 가득한 웅성한 나무들과 비죽이 내민 오가피 새순이랑 두릅을 보자니 기특한 마음이 한량없다. 바닥은 또 어떠랴! 군데군데 나있는 취나물과 쑥, 곰취 등이 지천에 널려있어 우리들의 먹거리를 채워주고 있었다.
이런 마음으로 소로는 <월든>을 지었으리라! 자연에 감사하며, 나 또한 그 자연의 작은 하나임에 겸손하며 낮아진 마음으로 경이로운 자연의 섭리를 바라보았을 것이다. 미국의 시골풍경이든 한국의 봉평풍경이든 자연의 카테고리 안에선 모두 같다. 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인간으로서 사는 삶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