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는 길에는 언덕이 있는데 이 언덕가에는 개나리대가 뭉텅이로 심겨있다. 다른 계절에는 있는지도 모르게 숨어있다가 차가운 기운이 쌀쌀한 정도의 느낌으로 변할 때, 이아이는 살아난다. 살살 피워도 머라 하는 이 없건만, 어찌나 열정적으로 피워대는지 안 볼 수 없을 정도로 소담스레 핀다.
개나리가 노란 이유는 겨우내 갈색과 검정만 보던 지루함을 한방에 날려버리기 위한 신의 선물이 아닐까?
나폴레옹이 승전가를 부르며 개선문을 향해 입성하는 것처럼 강렬하게 봄을 알리기 위한 팡파르가 개나리일지 모른다. 파스텔톤의 노랑도 아니고 쨍한 노란빛으로 사람의 영혼을 깨우니 말이다.
그렇게 마음 바쳐, 몸 바쳐 2주간을 환하게 비춰준다. 오고 가는 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뽐내듯 4개의 꽃받침을 휘날리며 봄이 왔다고 알린다. 개나리의 꽃말이 '희망' '기대' '깊은 정'인 것도 이해가 된다.
그렇게 수년간 출. 퇴근하며 봐온 이 아이는 비와 바람에 '봄'자가 붙기 시작할 때, 강렬하게 왔던 것과는 달리 수줍은 소녀처럼 조용히 퇴장한다. 목련처럼 자기 몸 상한지 모르고 갈변하며 더 버텨보겠다고 징징거리지도 않고, 벚꽃처럼 잎을 흩날려 온 동네를 꽃잎으로 덮으며 자신이 장렬히 사라짐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적당한 시기에 바람에 몸을 의지해 툭, 봄비에 젖어 더 이상 버거워지면 툭, 떨어질 시기인데 나만 붙어있을까 봐 배려하는 마음으로 툭. 그렇게 소리 없이 툭툭거리며 자신의 자리를 비워낸다.
다른 이들은 벚꽃이 만개해 탄성을 지르는 어느 날, 나는 개나리의 자리가 비워짐을 보며 잠시 아쉬워하다 다시 생각한다. 채울 때 채울 줄 알고, 비울 때 비울 줄 아는 이 아이들이 어찌나 대견한지!
내 자리일 때는 최선을 다해 섬기다가, 적절한 시기를 놓치지 않고 비워내 주는 것, 그리고 어떤 것도 나타내거나 내세우지 않고 비켜주는 마음을 개나리에게서 배운다.
휘황찬란한 벚꽃이 만개한 이때, 나는 개나리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