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한 뒤, 출근시간이 빨라졌다. 1시간 먼저 일어나 씻고 간단히 화장하고 반려견인 알콩이를 준비시킨다. 얼굴 닦여 빗기고 예쁜 옷을 골라 입힌 뒤, 알콩이 도시락을 챙겨 부랴부랴 나간다. 학교 근처 일찍 여는 유치원에 1번으로 등원시키고 출근하면 8시 10분 정도가 된다. 참 분주한 아침이다.
그러다 보니 나에게 신경 쓰는 시간이 줄었다. 전에는 고데기로 머리를 말기도 했는데 패스, 치마 입고 멋 내기도 패스, 아침 찬양 들으며 감동받기도 패스, 느릿느릿 걷기도 패스!
매일 해야 하는 화장도 어떡하면 더 간단히 하는 지도 통달 수준이다. 사람처럼은 보여야 하니 가장 기본만 꾸미고 다닌다. 도시락을 싸는 날은 더 정신이 없다. 가방 세 개와 강아지 한 마리를 들고, 심지어 우리 강아지는 다른 사람을 보면 짖는 경향이 있으므로 한 손으로는 입을 잡고 집을 나가는 모습은 흡사 웃픈 코미디의 한 장면이다.
봄이 온다. 밖에는 벌써 벚꽃이 들쑥들쑥 움을 틔우며 발동을 건다. 개나리는 이미 자신의 존재를 강렬히 알리고 전사하기 일보직전이다. 집 앞 가게에는 갖가지 꽃들을 팔고 있어 지나갈 때마다 시선강탈이다.
내 마음도 자꾸 들썩들썩한다. 몸은 아직 정상적인 컨디션이 돌아오지 않은 겨울 같으나 마음만 봄을 향해 간다. 검은색 투성이었던 옷도 구석으로 던지고 파스텔톤의 옷들에 손을 뻗는다.
그리고
이 바쁜 아침에 서랍 어딘가에 아이가 쓰던 볼터치를 끄집어내어 손가락으로 쓱쓱 문질러 나의 볼에 벚꽃을 그려 넣는다. 칙칙한 얼굴에서 화사한 벚꽃이 피기를 기대하며 가만히 볼터치 한 얼굴을 들여다본다.
손바닥보다도 작은 것이 맹맹한 얼굴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다홍빛 바알 간 색이 내 얼굴에 발동을 건다.
내 얼굴에만 봄이 오지 않고 모든 이의 마음에 볼터치를 해서 따사로운 사랑의 발동을 걸어주길 기대한다. 박스를 모아 힘겹게 끌고 가는 어르신의 어깨에도, 노점에서 장사하는 아주머니의 차가운 도시락에도, 그 추운 겨울밤 매일 과일박스를 들고 나와 땅바닥에 놓고 파시면서도 환하게 웃으시던 지체장애 아저씨의 주름에도 볼터치를 해주고 싶다.
이 분들에게 남은 생이 흉흉한 삶이 아니라 다홍빛 바알 간 따사로운 삶이 되시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