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남자 친구였을 때, 그의 첫 번째 생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연인의 생일이면 당연히 좋은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나는 우리 지역에 있는 좀 비싼, 평소에 가기는 부담스러운 레스토랑을 몇 군데 검색해서
남자 친구에게 보냈다.
- 이 중에서 어디에 가고 싶어???? 먹고 싶은 걸로 사줄게.
- 너무 비싸. 집에서 해 먹어도 돼
처음에는 진짜 가격이 부담돼서 그러는 줄 알았다.
어차피 내가 사는 거고, 나도 그 정도 능력은 되는데 왜 그러지? 싶었는데
마트에서 장을 보면서 알았다. 돈 때문은 아니구나.
생일상이니까 갈비찜, 잡채, 미역국, 전 이런 걸 해 주려고 했는데
레스토랑 가서 사 먹는 것보다 돈이 더 많이 나오더라.
지금이라도 레스토랑 갈까??? 물어봤는데 그래도 집에서 해 먹고 싶다는 남자.
처음에는 나도 좋은 마음으로 해 주려고 했는데
여름에 비 맞으면서 장 본 걸 가지고 집에 가서 몇 시간씩 혼자 가스불 앞에서 요리하려니 짜증이 올라왔다.
'그냥 사 먹으면 편할 것을....'
그래도 남자 친구 생일이니까 오늘은 짜증 내지 말자 다짐하고 생일상을 잘 차려줬다.
그 후에도 남자 친구는 항상 내가 해 준 집밥을 먹고 싶어 했다.
내가 요리하는 걸 좋아하기는 하지만 손맛이 좋은 스타일은 절대 아닌데 신기했다.
그와 함께한 지 3년쯤 되니까 이제 알겠다.
집밥은 단순한 한 끼가 아니라 그에게 위로와 따뜻함을 준다는 걸.
힘든 하루를 보내고 점심도 제대로 못 먹는 날이 많은데 저녁에 집에 가서
사랑하는 사람이 차려 주는 정성스럽고 따뜻한 밥을 마음 편하게 같이 먹는 게 좋은 것이다.
스무 살 때부터 가족과 떨어져 살아서 집밥을 자주 먹지 못했던 것도
집밥을 그리워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일지도.
이걸 깨닫게 된 후로는 별말 없이 집밥을 차려 준다.
다행히 나도 요리를 좋아하고 집밥이 건강을 위해서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좋은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남편 입맛이 까다롭지 않고 뭐든지 잘 먹어서 나도 해 줄 맛이 난다.
그래도 가끔은 나도 밥 하기가 귀찮고 남이 나를 위해 차려주는 밥이 먹고 싶은데
남편은 나한테 밥을 해 줄 생각은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