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체른 역에 도착해서 버스 타고 가야 하는데
스위스가 처음이라 스위스프랑 동전이 없었다.
그래서 버스표 못 끊고 어쩔 줄 몰라하고 있으니까
어떤 스위스 아저씨가 자기 돈으로 표를 끊어주셨다.
아 아저씨 감사해요!!
내가 그럼 유로화라도 드리겠다고 하니까
진짜 괜찮다고 거절하셨다.
그리고선 숙소 예약도 안 하고 온 내가 걱정되셨는지
같이 버스 탄 커플 여행객에게 날 부탁했다.
너네 가는 호스텔에 얘도 데리고 가라고 ㅎㅎ
하지만 난 오랜만에 한인민박에 가고 싶어서
그 커플에게 난 알아서 갈 테니 걱정 말고 너네 갈 길 가라고 했다.
유럽 여행 시작하기 전에 루체른에 있는 한인민박 주소를 적어둔 게 있어서
무사히 한인민박 집을 혼자 찾아왔다.
근데 숙박객은 한 명이고, 주인 부부는 오늘 금요일이라서 소풍을 갔다고 했다.
그래서 무작정 컴퓨터 하면서 기다렸다.
일단 남는 베드는 많은 것 같으니 잘 수는 있겠구나 싶어서.
오랜만에 컴퓨터를 하니 어찌나 반갑던지.
컴퓨터를 하고 있는데 배가 고파졌다.
눈치챘는지 한 명뿐인 숙박객이 갖고 있던 빵을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했다.
주인 부부가 피크닉에서 돌아오시고 다행히 편하게 숙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숙소에서 같이 묵은 단 한 명의 숙박객 오빠와 리기산에 갔다 왔다.
오늘은 완전 재수가 좋은 날이었다!?
말한 대로 이루어지는?!
아침에 유람선 타러 가면서 오빠가 눈앞에서 배 놓치는 거 아니냐고 했는데
진짜로 눈앞에서 배를 놓쳤다.
선착장 찾아가려고 직원한테 물어봤더니 10시 유람선은 이미 떠났으니 한 시간 기다려야 된다고...
그래서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데 배가 아직 있는 게 보였다.
그래서 부랴부랴 뛰어갔으나 바로 눈앞에서 발판이 걷히더라.
이거 말고도 리기산에서 돌아올 때도 눈앞에서 로프웨이 놓치고
30분 기다렸는데 또 한 번 놓치고;;
오늘은 정말 말한 대로 이루어지는 날이었다.
사람은 역시 말조심해야 한다.
일상이었으면 엄청 짜증 났을 것 같은데
여행 중이라 그냥 이 상황이 웃겼다.
이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
오래간만에 내 사진 찍어줄 일행이 생겨서 원피스를 차려입고 리기산에 올라갔다.
근데 리기산 정말 추워서 얼어 죽을 뻔했다!!
역시 1800m는 무시할게 못 된다.
현지인들은 다들 등산복 입고 왔던데
날 보고 미친 x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늘 산 아래에서 눈 쌓인 산을 바라만 보다가
직접 올라가 보니 너무 좋았다.
이 봄에 새하얀 눈도 밟아 보고
산 아래 세상이 소인국처럼 보여서 좋았다.
자동차나 사람들 지나가는 게 점처럼 보이더라.
나도 저렇게 점처럼 작은 존재이고
이 작은 내가 하는 고민과 걱정들도 아주 작은 먼지 같은 것일 테니
너무 고민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자고 생각했다.
루체른은 진짜 예쁜 도시인 것 같다.
정말 예쁜 색깔의 루체른 호수, 깨끗한 공원과
호숫가에 줄지어 있는 별장들.
돈만 있으면 루체른 호숫가에 별장 하나 사서
산에 가고 싶을 땐 산에 가고
수영하고 싶을 땐 집 앞 호수에서 수영도 하고 보트도 타고
그럼 참 좋겠지??
여기 사람들은 왠지 여유가 있는 것 같아서 부럽다.
내가 루체른으로 온 때가 금요일 오후였는데
벌써 사람들 다 공원에 누워서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주말이면 다들 공원에 나와서 운동도 하고
여자들은 비키니 입고 썬텐도 하고
아이들이랑 나들이도 하고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