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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츠부르크에서 만난 남자 둘

by meiling

기차 타고 빈에서 잘츠부르크로 왔다.

한 칸에 6명이 탈 수 있는 기차였다.

2명씩 마주 보고 앉아서 가는 기차인데 우리 칸에는 나, 20대 초반 남자 애, 인도 사람(처럼 생긴) 아저씨

이렇게 세 명이 앉았다.

프라하에서 만난 언니가 기차에서 가방 도둑맞은 얘기를 해 줘서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난 이제 여행 초반인데 돈을 다 잃어버리면,,,,

여행도 끝내야 하고,

지난 1년 동안 내가 유럽 배낭여행 가려고 힘들게 아르바이트했던 시간들이 도루묵 되는 거다!!

자물쇠 꺼내서 캐리어 묶어 두고 잠을 자고 싶기도 한데

왠지 의심하는 것 같아서 그건 또 미안하고 너무 졸렸다.


어차피 할 것도 없고 심심해서 앞에 앉은 20대 초반 남자 애랑 대화를 시작했다.

내가 오스트리아에 대해 뭐 물어봤을 때 잘 대답해 주고 착한 애 같아서

사진도 찍고 이메일도 교환했다.

난 유럽 사람들 다 영어 잘하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가 보다.

어제 만났던 필립은 의대생이라 그런지 영어도 잘했었는데..

얘도 나도 영어가 짧으니 그림까지 그려가며 대화했다.

그리고 옆에 앉은 인도 사람(처럼 생긴) 아저씨가 답답했는지 대화를 도와주기도 했다.

인도 아저씨가 먼저 내리고 나서 내가 얘한테 나 몇 살처럼 보이냐고 물었다.

외국 사람들이 한국인 어리게 본다길래 난 좀 기대하면서 물었는데

나보고 26살???? 이러길래 내가 지금 초췌하구나 싶었다.

나 23살인데;;

나는 얘가 10대인 줄 알았는데 22살이라고 했다.

빈에 있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는데 지금은 부활절 방학이라서 고향에 가는 길이라고 한 것 같다.

내 이름을 적어 줬더니 발음이 어렵다고 했다.

내 이름 끝 글자가 '령'이라서 한국 어르신들도 발음이 안 되는 분들이 있다.

내가 r + young 이라니까 자꾸 알영이라고 그래서 그냥 '영'이라고 부르라고 했다.


어젯밤에 침대에 누워있다가 그냥 잠드는 바람에 오랜만에 오래 푹 잤다.

근데 새벽에 잠결에도 너무 춥다고 느꼈다.

이렇게 추운데 여기서 하루 더 머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쯤

내가 난방을 안 켰다는 사실과 어제 침대 시트 갈면서 담요를 윗침대로 던져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니 추울 수밖에..;;

너무 추웠지만 잠이 이겼다.

계속 춥다고 생각하면서 그냥 잤다.


잘츠부르크 대성당에 잠깐 들렀다가 호엔잘츠부르크 성으로 올라갔다.

해발 542미터 산 위에 지어진 성이다.

올라갈 때 열차 타고 올라가는데 너무 경사가 심해서 무서워 죽는 줄 알았다.

그래도 올라가니까 정말 경치가 끝내 줬다.

날씨도 너무 좋았고 공기가 맑아서 그런지 너무 깨끗하게 잘 보이더라.

사실 시내 돌아다닐 때부터 혼자 카메라 메고 여행 온 남자랑 자주 마주쳤다.

나중엔 내가 일부러 피했다. 하도 많이 마주쳐서 I인 나는 좀 부담스러웠다.

근데 그 사람을 호엔잘츠부르크성에 올라갔다가 또 만났다.

워낙 작은 도시이긴 하지만 그래도 일행도 아닌데 이렇게 많이 마주치기도 어려울 텐데 신기했다.

마지막엔 내가 어느 건물에 들어가려고 문 앞에 섰는데 이 사람이 문을 열고 나왔다.

너무 예상치 못한 순간에 또 우연히 마주쳐서 둘이 막 웃었다.

이 사람은 가방에 아일랜드라고 적힌 걸로 봐서 아일랜드 사람인 것 같고

어쨌든 영어를 굉장히 잘하더라.

근데 내가 영어가 부족해서 나한테 머라 머라 하는데 그냥 웃어줬다.

얼굴도 눈도 동그랗고 뽀글뽀글 파마머리에 배가 볼록하니 정말 귀여웠다.

게다가 눈 마주치면 웃어주는데 완전 표정이 살아 있다고 할까?

생글생글 생기 있는 젊은 남자였다.

만화에서 나온 것 같은 완전 귀염상이었는데 사진 안 찍은 게 아쉽네.

지금 생각해 보니까 개그맨 조세호 씨의 양배추 시절 느낌이었던 것 같다.

조세호 아일랜드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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