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혜진 Dec 29. 2021

3-6. 과거로부터 들려오는 완벽한 신호

행복을 발견하고 가만히 귀 기울이면, 내 안에서 들려오는 또 다른 신호를 들을 수 있다. 먹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언제나 존재하던 하늘처럼, 나의 신호가 들려온다. 그것은 어린 시절 꿈일 수도 있고, 부여받은 재능일 수도 있다. 아니면, 내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나일 수도 있다. 자신을 아는 것은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     




학교에서 돌아와 숙제하려고 200자 원고지를 펼쳐 놓고,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렸다. ‘식목일 글짓기’ 학교에서 식목일 글짓기를 숙제로 내주었다. 다른 숙제도 그렇겠지만,  아이들은 유난히 글짓기 숙제를 싫어했다. 평소 숙제를 잘 챙기는 편도 아니었고, 다른 아이들처럼 나 역시 글짓기 숙제를 싫어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한 번도 해 본 적은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숙제가 하고 싶었다. 텅 빈 집에서 딱히 할 것도 없었던 터라, 언니를 기다리며 식목일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식목일은 나무를 심는 날이지만, 식목일에 나무를 심어본 적이 없었다. 광복절과 삼일절에 대문에 국기를 게양하는 것처럼 식목일에도 이 집 저 집 나무를 심어야 할 것 같았지만, 동네에서도 나무를 심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막상 글짓기를 하려고 원고지를 펼친 순간, ‘나무를 심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글짓기를 한담’하는 고민에 빠졌다. 게다가, 우리 집 주변은 온통 산과 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봄엔 개나리와 진달래 숲이 우거지고, 계절의 여왕 5월이 되면 아카시아가 송이송이 피어나 동산을 이뤘다. 아카시아 향기가 온 마을에 퍼져, 코끝을 간지럽힐 무렵에는 문밖을 나서는 것이 좋았다.     


‘글짓기’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하며,‘그래, 지어서 쓰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고 나니, 글로 쓸 말들이 술술 떠올랐다. 지우개로 글자를 지울 일도 없었다. ‘200자 원고지 5장을 언제 다 쓰나’라고 했던 고민이 싹 사라지고, 5장을 넘기고 있었다. 저절로 신바람이 났다.     



나는 식목일에 작은 묘목을 아빠로부터 선물 받았습니다. 너무 작은 묘목이라 이름도 모르는 그저 작은 묘목이었습니다. 작은 묘목에게 ‘그루’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뒤뜰에 심고, 물을 흠뻑 주었습니다.  
“ 잘 지내자, 그루야.” 그런데 그루가 이틀이 지났는데도 가지를 축 늘어뜨리고 마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너무 슬펐습니다. 아빠에게 달려갔습니다. “아빠. 그루가 아픈가 봐요!!!” 아빠는 “나무도 처음 땅에 심으면 적응하는 기간이 필요하단다.”라고 말씀하시며 나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다음 날이 지나고, 그다음 날이 지나도, ‘그루’는 어쩐지 생기를 찾지 못하였습니다.      

나는 학교가 끝나면 곧장 그루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루에게 물을 주기도 하고, ‘그루’와 함께 있어 주었습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학교가 끝나면 그루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그루의 줄기가 조금 단단해진 것 같았습니다. 너무 기뻤습니다. 며칠 후, 그루는 초록색 작은 이파리를 살포시 내밀며 피어났습니다.
“그루야 고마워”
나의 작은 정성이 한 그루의 나무를 살린 것이었습니다.」     

(대략 그런 내용이었다.)


글짓기를 완성하고, 학교에 당당히 제출했다. 숙제를 제출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혔을 무렵,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조회시간에 내 이름이 불린 것이다. 그때까지 선생님이 과연 이름을 알기나 할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존재감 없는 아이였다. 그런데 교단에서 내 이름이 불렸고, 너무 놀라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을 만큼 다리가 후들거렸다. 어떻게 교단까지 올라가 상을 받아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교실로 돌아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는데,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잘 썼다고 칭찬해주셨다. 아이들 앞에서 내가 쓴 글도 읽어주셨다. 기분이 야릇했다. 얼굴은 후끈후끈 달아올라 불타는 고구마가 되었다.    


집으로 돌아와 상장을 몇 번이나 보고, 또 보았다. 나의 이름 세 글자가 손가락으로 만져지는 것 같았다. 내 이름이 빛나고 있었다.     


oo국민학교, 2학년 1반, 장 혜 진                   


                



이미지 출처

Matthias Zomer 님의 사진, 출처: Pexels



엮인 글 1.

https://brunch.co.kr/@hyehye314/6


함께 보면 좋은 글 2.

https://brunch.co.kr/@hyehye314/8


작가의 이전글 내 아이를 내 아이라고 말하지 못한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