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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진 Jan 10. 2022

3-9. 사랑할 수 있는 능력

지금, 사랑하고 있나요?

사랑은 능력이다. 사랑을 받는 것도, 주는 것도, 모두 능력이다. 마음의 밭을 잘 가꾸고 돌본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랑은 온전히 나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이니까.





“엄마, 나 이번 생일에 꼭 갖고 싶은 게 있는데, 엄마가 들어주면 안 될까?”


“뭔데?”


“나 아빠한테 생일선물 받고 싶거든! 그래서 부탁이 있는데, 엄마가 번 돈 말고, 아빠가 ‘나를 잘 키워 달라고 주는 돈’으로 갖고 싶은 선물을 사줬으면 좋겠어. 그동안 아빠가 내 생일에 선물해 준 적이 없잖아. 엄마가 그 돈으로 선물을 사주면, 아빠한테 받은 선물이라고 느낄 것 같아”


“…아… 그래? 갖고 싶은 게 뭔데?”


“젤리켓, 버니 인형”


“그 토끼 인형 말하는 거야? 근데, 왜 그 인형이야? 그 인형은 아기들이 가지고 노는 애착인 형이잖아? 밤에 안고 잘 수 있는 인형이 필요한 거야? 차라리 보디 필로우를 하나 사줄까?”


“아니, 그것 말고, 젤리켓 버니 인형이 갖고 싶어.”


“하늘아, 어릴 때도 애착 인형 같은 것은 찾지 않았는데, ㅎ 그 인형이 그렇게 예뻐?”


“그 인형이 예쁜 것도 있고, 그냥 그 인형이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하늘이의 11번째 생일, 생일에 대한 기대를 잔뜩 품은 하늘이가 아빠의 선물을 받고 싶다며 ‘아빠의 선물 공수 방식’을 제안했다. 이번 생일은 모처럼 맞은 휴가 덕에 직접 하늘이의 생일 파티를 준비하기로 했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케이크를 고르고, 오후 내내 주방에 김밥 재료며, 과일과 떡, 식재료를 쭉 늘어놓고 음식을 준비하면서 나 역시 설레고 들떴다. 하늘이는 파티를 준비하는 동안, 아니, 아침에  눈을 뜬 순간부터 온전히 그날의 주인공이 되어 주인공다운 표정과 여유를 몸으로 뿜어내며, 빛나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아이의 첫돌을 시작으로 생일이 되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공허했다. 하늘이도 나와 같을 거라 생각했다. 그럴 때면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고깔모자를 쓰고 노래를 불러주는 이벤트를 요청했다. 공허함을 다른 사람들의 환호로 채우고 싶었다. 하늘이가 어릴 때는 자매가 모두 멀리 살고 있어 모이기가 쉽지 않았다.  또래 엄마들과도 친분이 별로 없어, 파티를 파티답게 장식해 줄 사람이 없었다. 늘어난 식구로 인해 집은 하루하루가 시끌시끌했다. 덕분에 하늘이의 생일마다 느껴지던 공허함도 옛날 일처럼 느껴졌다. 그저 함께 먹을 음식을 준비하느라 바빴다.      


옷장 속에는 하늘이가 갖고 싶다던 젤리켓 버니 인형이 들어 있었다. 마음에‘아빠가 나를 잘 키워달라고 준 돈’이라고 덤덤하게 말하던 하늘이의 말이 남아 있었다. 하늘이는 아빠와의 기약 없는 이별 후에도 가끔 아빠를 그리워하며 울곤 했다. 언제나처럼 하늘이가 울면, 모든 감정을 다 흘려보낼 때까지 함께 있어 주었다. 언젠가 “아빠가 하늘이와 함께하지는 못하지만, 하늘이를 잘 키워달라고 엄마한테 돈을 보내고 있고, 엄마가 그 돈으로 하늘이의 옷도 사주고, 하늘이가 좋아하는 음식도 사주고 있다”라고 말했었다.


하늘이는 그때도 눈물을 그친 다음, 품에 안겨 잠자코 그 말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말이 아이의 마음에 자신에 대한 사랑으로 자리매김할 줄은 몰랐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아빠가 나를 잘 키워달라고 준 돈’이라고 하늘이는 말했다. 그날, 아이에게 전달한 그 마음을 정확하게 흡수하고 있었다. 그것이 아빠라는 존재로부터 받은 가장 현실적인 사랑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하늘이는 가끔 일상을 이야기하듯이 아빠 이야기를 했다. 나 역시 일상을 이야기하듯 아빠가 보고 싶은지를 묻곤 했다. 그럴 때마다 “보고 싶긴 하지”라고 아빠에 대한 감정을 이야기하다 눈물을 글썽거리곤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기억에 겨우 몇 시간 마주한 아빠를 사랑한다고 했다. “우리 아빠니까”라고 하늘이는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아이의 진심이 느껴질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 일면에 이름 모를 불안이 뒤엉켜 올라왔다. 그러다 코끝이 찡해졌고, 어른인 내가 부끄러워지곤 했다. 





앞으로 하늘이와 아빠와의 관계가 어디로 흘러갈지 알지 못한다. 그곳이 어떤 곳이든, 미리 두려워하지 않는다. 알 수 없는 미래를 속단하며 불행을 자처하지도 않으며, 지나가 버린 시간을 후회하며 아파하지 않는다. 하늘이는 주어진 상황 속에서 자신이 흡수할 수 있는 진실과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안전지대에 발을 붙이고 삶을 가꾸고 있다.      


그날 저녁, 열한 번째 생일 파티는 그 어느 때보다 시끌벅적하고 행복한 파티였다. 오후 내내 정성껏 예쁘게 차려 낸 엄마의 생일상도 처음이었다. 두 눈을 가리고 파티에 등장한 하늘이는, 가족들의 축하를 받으며 웃음을 가득 머금은 얼굴로  “후~~”하고 촛불의 불을 껐다. 그리고, 조카들이 준비한 선물과 편지를 반짝이는 눈으로 하나하나 열어 보았다. 하늘이의 가슴에는 아빠의 선물, 바니 인형이 안겨 있었다.            



“엄마, 이 인형은 당연히 아빠가 준 돈으로 사줬으니까
 이건 아빠의 선물이 맞는 거야.
 이 인형을 볼 때마다
‘아빠의 선물’이라고 느끼고 있어.”     




무엇이든 절대로 바꿀 수 없는 것이 있어, ‘사랑과 미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사랑을 선택하는 편이 지 않을까.  


사랑, 그것이야말로
평화롭고 안전한 곳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힘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때때로 마음이 교활하고 둔탁해져  도저히 그것을 느끼지 못할 때조차도
 그대로 거기에 변함없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것은 어둡고 초라한
자아와 함께 살아왔던 내가
 엄마가 되어 깨닫게 된 가장 아름다운 진실이며 삶의 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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