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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퍼 May 11. 2023

정규직 밭의 비정규직 잡초

잡초는 뽑힐 것인가 어떤 흔적을 남길 것인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계약 조건은 비정규직. 계약직 근로자였다.

아등바등 피해 다니려고 노력했던 기간제였는데, 다시 또 계약직이 되었다.


첫 출근하며 내가 계약직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상기시키지 않았는데,

근로계약서를 쓸 때 한 번, 입사 동기들이 지급받았다는 물품들을 나는 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또 한 번, 계약직은 홈페이지에 사진이 올라가지 않기에 사진 제출 요청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별 다른 의도 없이 확인받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은 신규 입사자를 대상으로 진행한다는 독서 스터디 일정을 내게 묻는 팀장에게 "들은 적이 없다"라고 답했더니, 해당 부서에 문의해 보라기에 물었더니 "계약직 근로자는 해당사항 없습니다"라는 대답을 통해 또 한 번 확인받았다.


오늘로 출근한 지 3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매일 한 번 이상 내가 이 조직에 계약직 근로자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확인받아야 했다. 문제는 이 조직에 많은 신규 입사자 중 나만 계약직이라는 사실인데, 그 또한 이 사실들을 확인받으며 알게 된 사실이었다.


도대체 왜 정규직과 계약직은 차이가 있어야 할까. 그 사실들은 내가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2010년대 초와 왜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어린 마음에 상처였던 그 차이들은, 경력이 쌓이고 내가 배우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업무들이 쌓였음에도 여전히 상처를 남긴다.


회사에서는 자주 당연하다는 듯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근로자에게 계약직임을 강조하여 근로자에게 '아, 나 계약직이니까 이만큼만 해야지'라는 마음을 갖게 하는지 모르겠다. 이 마음들에 나는 입사하며 다짐한 '열심히 해서 정규직으로 자리 잡아야지'라는 마음까지 전부 잡아먹히고 만다. 사회에 뜯어 먹혀버린 열정을 열심히 끌어모아 다짐했는데, 3일 만에 나는 다시 그럼 그렇지. 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이런 마음으로 나는 얼마나 잘 해낼 수 있을까.


자주 비정규직이었던 나는 오늘 내가 잡초는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아직 때를 만나지 못해 꽃 피우지 못한 씨앗이라고 생각했는데, 언제까지고 꽃 피울 때를 마냥 기다릴 수 없어 잡초가 되어버린 것 같다. 지금까지 내가 잡초라는 걸 인정할 수 없어 서러웠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잡초로서 이 조직에 어떤 흔적을 남길 수 있을까. 어떤 장점을 발휘할 수 있을까.


아마도 나는 이 조직에서의 비정규직 기간을 잡초로서 뽑힐 것인지, 어떤 흔적을 남길 것인지 고민하며 보낼 것 같다. 근데 어쨌든 잡초는 뽑혀서 사라지는 존재인 것 같아서 지금은 서운하고 속상한 마음이 크지만, 나-중에는 잡초가 어때서? 혹은 나 잡초 아니었네?라고 회고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스스로가 썩 괜찮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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